[경상시론]외국어 사용과 세계화
거리에 넘치는 외래어 간판, 뜻을 알기 어려운 글이 인쇄된 옷과 학용품 그리고 교육현장에까지도 넘치는 국적 모를 말과 외국어들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식민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든다.
많은 학자들이 말은 곧 생각이며, 인간의 정신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 활동과도 관련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말은 어떠한가. 2009년 정부가 시작한 언어정책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단적인 예로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 김시열씨가 2010년 쓴 글을 통해 당시 언어정책의 단면을 볼 수 있다.
기고한 내용을 보면 2009년 당시 정부에서 설치한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정부의 부서 이름부터 디지털콘텐츠과, 콘텐츠사업과, WDC담당관, 남산르네상스담당관 등 영어로 바꾸었다. 그리고 영어교육에 수천억원의 예산을 배정하면서 정작 우리글, 한글을 위한 예산에는 인색했다. 2014년 마침내 ‘모든 공문서는 한글로 쓰게 한’ 국어 기본법 11조를 없앴다.
시민단체도 이에 발맞춰 ‘잘못된 영어 발음 추방운동’으로 ‘사랑의 밧데리(Battery)’란 노래를 부른 가수의 방송출연을 못하게 했다. 배터리란 가사를 배러~리로 제대로 부르지는 못할망정 ‘빳때리’라고 했으니 그럴 만하다. 또한 2009년 당시 정부는 ‘오륀지’ 발음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따져 편을 갈랐다. 회사 이름부터 KT, KORAIL, K-Water따위로 부르기 시작했고, 대학입학원서와 기업입사원서는 영어로 쓰게 되었고 부동산 거래나 자동차 구입 계약서를 영어로 쓰면 계약금의 일부를 정부에서 지원해주기도 했다.
이는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추진했던 웃지 못할 일들로 세계화의 본질을 망각한 것이다.
그들은 오늘날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우리말 노래가 세계를 휩쓸고 그들이 입은 한복 무대의상과 무대 배경이 된 경복궁이 우리의 고유문화로서 세계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상황이 바로 세계화이다.
세계화는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늘날의 세계화는 남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의 것을 다른 나라에 가르쳐주는 것을 세계화의 시작으로 하고 있다. 남의 것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세계화가 아닌 문화의 식민지화인 것이다.
다른 나라의 한 예를 보자. 39세에 독일 최연소 자민당 당수를 지냈고 독일의 전 외무장관을 지낸 ‘토론의 귀재’ 베스터 벨레(Westerwelle) 장관은 외무장관이 되면서 ‘독일 내 공식 행사에서는 독일어로 말해야 한다’면서 “독일어는 훌륭한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 문제로 혼란을 겪을 어떤 이유도 없다”라고 공언했다.
또한 영어로 질문하는 BBC기자에게 독일어로 말해줄 것을 요구하면서 논란이 일자 “영국에서 사람들이 영어로 얘기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처럼 독일에서는 독일어로 말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그의 민족자주정신과 국민을 최우선으로 두는 신념이 깃든 행동인 것이다.
어느 나라든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민족에 대한 자긍심과 자주정신을 심어주는 것을 교육의 근본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역사, 그리고 우리 나라말과 글을 바르게 가르침으로써 우리의 자주정신을 굳건히 심어주는 일이 우선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창조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허황 울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