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45)]구례 화엄사 동서 오층석탑

2021-06-25     경상일보

화엄사 일주문 앞이 분주다사하다. 상모를 쓴 풍물패도 모여든다. 대웅전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승격되면서 새롭게 복장갖춤을 하는 불사에 판굿을 벌이기 위해서다. 불복장작법보존회 경안스님이 집전하는 5일간의 의식이 진행 중이다.

동서 오층석탑이 있는 마당 한 가운데 깔밋한 제물이 진설된 상이 차려지고 오색기도 나부낀다. 400년 만에 전통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대작불사를 보기 위해 멀리서 온 불자들과 카메라를 든 취재진으로 가득하다. 덕분에 쌍탑은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다.

닮은듯하나 다른 양식을 하고 있는 두 탑은 모두 통일신라 하대에 조성되었다. 대웅전 앞의 동오층석탑은 보물 제132호로 단층 기단에 오층의 탑신을 올렸다. 아무런 장식이 없어 날아오를 듯 가뿐하다. 서오층석탑은 보물 제133호로 이중 기단위에 세워진 오층의 방형 석탑이다. 표면에 조각과 장식이 빼곡하다. 아래층 기단에는 십이지신상을, 위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을 입상으로 새겼다. 일층 몸돌에는 각 면에 1구씩 사천왕상을 조각하였다. 탑 속에 봉안된 사리장엄구를 지키려면 불법을 수호하는 신은 꼭 필요한가 보다.

배례석도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동탑 앞에는 그저 밋밋한 돌이 있다. 무심히 지나치면 배례석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서탑 앞에 놓인 배례석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옆면 안상문은 뚜렷하고 윗부분에 활짝 핀 세 송이 연꽃은 금방 아로새긴 것처럼 생생하다. 가까이 하기에는 부담스러워 멀찍이 떨어져 바라본다. 석공은 복잡하고 화려한 서오층석탑을 세워놓고 보니 아차, 깨달음이 있었을 것이다. 온 정성을 다해 장엄을 했지만 슬쩍 욕심이 앞섰던 탓이다. 그래서 동쪽의 탑은 침잠하는 자세로 나아갔던 것은 아닐까?

한참 탑돌이를 하는 동안 작법의식의 장소는 보제루로 옮겨가고 잠잠하다. 각황전 마당에 올라 두 탑을 내려다본다. 연꽃 대좌 위에 앉아 계신 대웅전의 거대한 목조삼신불이 국보로 승격되니 절집은 걸림이 없는 화엄의 바다가 된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