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역사로서의’ 한국전쟁

2021-06-25     경상일보

다시 6.25를 맞는다. 언제나처럼 먹먹한 슬픔이 밀려온다. 전쟁이 남긴 상처가 아직 다 아물지 않았고 고통이 사라지지 않은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런 상처와 고통을 여전히 파당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자들이 엄존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어쩌면 6.25를 역사의 자리로 돌려보내지 못해서 생긴 일이 아닐까? 제국주의와 식민지, 냉전, 지정학적 세력 관계 등 역사적 맥락에서 전쟁과 그 의미를 짚어보는 이유다.

첫째, 한국전쟁은 일제의 대두와 몰락, 미국의 지구적 패권 수립, 그리고 탈식민화 과정에서 누적된 모순의 폭발이었다. 19세기 말 청의 붕괴와 일제의 부상은 동아시아에서 전근대와 근대 세력의 교체였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로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는 막혔지만, 국권 회복과 근대국가 건설을 향한 투쟁은 나라 안팎에서 가열차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절망스럽게도 1919년 파리강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는 조선에 적용되지 않았다. 영국과 미국이 외면했기 때문이다. 이후 조선의 독립운동은 세계의 다른 식민지 민족주의처럼 윌슨주의와 레닌주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절충했는데, 이승만과 김일성은 각기 미국과 소련의 모델을 택했다. 분단된 한반도에서 미국과 이승만, 소련과 김일성이 상징하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탈식민주의 노선 사이의 충돌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이었다.

둘째, 한국전쟁에서 냉전은 결정적 변수였다. 미국과 소련의 한반도 분할 점령은 전쟁의 길이 되고 말았다. 이승만과 김일성에게 전쟁도 불사한 한반도 통일은 민족운동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하지만 소련 중국 미국은 처음에는 전쟁을 원치 않았다. 그런데 김일성의 요청을 거듭 거부했던 스탈린이 ‘변화된 국제정세’를 근거로 결국 전쟁을 ‘허락’했다. 아마도 베를린 봉쇄 실패, 소련의 원폭 실험 성공,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미국의 ‘애매한’ 동아시아 전략, 그리고 무엇보다 더는 전쟁을 거부할 명분이 없는 난감한 상황 등이 고려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미국이 남한의 붕괴를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임을 충분히 예상한 결정이었다. 그 점은 모택동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지를 내밀고, 김일성에게 실패의 책임을 전가하고, 휴전협상의 배후에서 미군을 장기적으로 묶어두고자 했던 스탈린의 행동에서 잘 묻어났다. 스탈린은 무엇보다 한국전쟁을 통해 사회주의 진영에서 ‘보스’의 자리를 굳혀야 할 때라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에게 한국전쟁은 일종의 독이든 ‘선물’이었다.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이 “세계를 전면전의 벼랑끝으로 몰고 있다”고 과장하고 중국과 소련의 개입 가능성을 무릅쓰면서 38선을 넘었다. 그 주된 목적은 세계적 차원의 봉쇄정책(containment)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국민적 동의와 세계를 향한 냉전 메시지였다. 하지만 도를 넘어선 매카시즘 광풍으로 미국은 경찰국가나 다름없는 상태에 빠졌고, 전쟁이 길어지자 미국민은 ‘전쟁의 목적’ 자체를 되묻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식민지를 경험한 제3세계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대의(cause)는 거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셋째, 한반도 갈등에서 지정학적 관계는 일종의 상수다. 16세기 말 일본과 중국, 20세기 초 러시아와 일본, 1945년 미국과 소련, 그리고 최근 미국과 중국 사이의 북한 유사시 ‘역할’ 논의 등은 그러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소의 38선 분할은 그중 하나였던 셈이다. 한반도 주변 강대국이 통일 한국보다 완충지대로서 분단된 한반도를 선호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다. 김일성의 무력통일 시도가 미국과 중국을 불러들여 실패로 끝난 것, 1972년 중국과 미국이 각기 북한과 남한의 군사적 움직임을 통제하기로 약속한 것, 그리고 분단이 지금까지 지속하는 것 모두가 기본적으로 그런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 스탈린 모택동이 일으킨 전쟁은 무모하고 무책임한 짓이었다. 그 명분이 무엇이든, 무력통일 시도는 현실적이지도 가능하지도 않았고, 여전히 그러하다.

지금은 1950년의 3가지 변수 중 지정학적 관계만 작동하고 있다. 물론 70년 이상 똬리를 튼 6.25 전쟁의 인식과 정서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을 봐야 길을 찾을 수 있다. 한국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소중한 교훈은 ‘한반도의 독립이 보장된 평화적 방식’이 가장 타당한 통일의 길이라는 점이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