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09)]살구와 매실의 계절

2021-06-29     이재명 기자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분이네 살구나무’ 전문(정완영)



필자가 어렸을 적 살구나무는 집집마다 한두그루씩 있었다. 꽃이 필 때는 그 화사한 분홍빛에 반했고, 이맘때가 되면 노랗게 익은 살구맛에 반했다. 살구나무는 하도 흔해 ‘고향의 봄’ 동요에도 나온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요즘 시골장터에 가면 할머니들이 들고 나온 살구가 광주리에 소복소복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옆에는 매실를 파는 할머니들도 있다. 눈으로 봐서는 어느게 매실인지 살구인지 분간할 수 없다. 우선 매실은 아랫부분 중앙이 약간 뾰족하다. 반면 살구는 조금 들어가 있다. 또 열매를 쪼개보면 매실은 씨가 깨끗이 분리되지 않는 반면 살구는 깨끗하게 분리된다. 시골장터에서 파는 살구는 과육이 충분히 익은 상태이기 때문에 신맛은 거의 없고 단맛이 강하다.

살구나무가 우리나라로 건너온 시기는 대략 삼국시대 이전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유사>에 신라 고승 명랑이 읊은 시에 ‘산 속에 있는 복숭아나무와 개울가에 있는 살구나무에 꽃이 피어 울타리를 물들이고 있다’는 구절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는 살구나무와 살구꽃에 대한 기록이 빠짐없이 등장한다.

개살구나무는 살구나무와는 달리 한반도에서 자라는 토종 나무다. 그런데 개살구는 그 맛이 도저히 먹을 수 없을 정도다. 오죽하면 ‘빛 좋은 개살구’ ‘개살구 옆으로 터진다’는 속담이 나왔을까. 그러나 개살구나무는 특별한 쓰임새가 있다. 스님들이 예불을 드릴 때 쓰는 목탁을 살구나무로 만든다. 특히 개살구나무로 만든 목탁은 소리가 맑고 청아하다고 한다.

행인(杏仁)이라고 불리는 살구씨는 약으로 쓰거나 기름을 짜는데 쓴다. 살구씨에서 추출한 기름은 기미나 주근깨, 잡티에 효과가 있다. ‘살구나무 숲’이란 뜻의 행림(杏林)은 의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용어는 후한 말~삼국시대 중국의 의사였던 동봉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동봉은 환자들에게 치료비 대신 살구나무를 심게 했는데, 이를 오랫동안 거듭하니 살구나무 숲이 만들어졌고 여기서 난 살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 오늘날 한의원을 행림이라 하고, 한방축제를 행림제라고 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됐다.


살구꽃이 필때면 돌아온다던/ 내사랑 순이는/ 돌아올줄 모르고 서쪽하늘/ 문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에 떨어진 꽃냄새가/ 나를 울리네~ ‘18세 순이’ 일부 (나훈아)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