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점심시간, 도시락, 급식

2021-07-07     경상일보

학교에서도 점심시간이 중요하다. 생존을 위한 영양공급, 오후 학습을 위한 재충전 시간이다. 도시락, 급식, 구내식당, 병영식당(짬밥) 등 자기 집이 아닌 곳에서 점심을 먹는 형태는 다양하다. 이 중에 학교 점심을 잠시 떠올려보자.

우리나라 현대 급식의 모태는 6·25 전쟁 직후로 볼 수 있다. 구호단체 또는 미국이 지원해준 밀가루, 분유, 설탕, 빵이 일부 학교와 관공서를 통해 배급되었다. 허기져서 그 자리에서 퍼먹은 학생도 있고, 집에 가져와서 이걸 물에 타서 가족들과 같이 먹은 학생도 있었다. 나름 영양공급과 배급의 개념이 보인다.

60~70년대의 학교 점심은 각 가정에서 싸온 도시락이었다. 양철 도시락은 걸핏하면 덜그럭 덜그럭 소음을 냈다. 가난했던 시절이라 최고의 반찬은 계란 후라이였고, 부모들은 눈치껏 계란 후라이를 밥 아래에 깔아줬다. 학생들은 찬밥을 데우려고 양철 도시락 안에 물을 붓고 난로 위에 올려놨다.

80년대에는 보온 도시락이 보편화됐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3~6학년이 된 학생들은 책가방, 실내화 가방 외에 도시락까지 들고 다녀야했다. 최고의 반찬은 소세지, 햄이었다. 교사들 또한 도시락을 싸오거나 학교 근처 식당을 이용했다. 점심 먹고 남학생은 축구를 하고, 여학생은 공기놀이를 했던 기억이 난다.

90년대에 경제가 더욱 발전하더니 도시락 반찬도 업그레이드 됐다. 고기가 최고의 반찬이 되었고, 아침에 반찬 만들 시간이 없으면 참치 캔과 맛김이 등장했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은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도시락 두 개를 들고 등교했다. 위탁 업체가 점심, 저녁시간에 맞춰 도시락을 갖다주기 시작했고, 기숙사 한정이라 하더라도 급식실을 갖춘 학교는 선진 학교 소리를 들었다. 물론 부모를 속여 식대를 엉뚱한 곳에 쓰고, 매일 컵라면으로 때운 학생들도 있었다. 단체 급식의 필요성과 효율성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에는 급식이 자리 잡았고, 도시락이 거의 사라졌다. 학교마다 조리실, 급식실을 만드느라 고생을 했고, 맛과 영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고민을 많이 했다. 어느 학교는 급식이 맛없다고 전교생이 시위했고, 어느 학교는 학생들이 직접 배식하다가 분량 조절에 실패해서 싸움이 터졌다. 교실에서 배식하는 학교도 있었는데 학생들이 국통을 나르다가 쏟으면 난리가 났다. 급식이 마음에 안들면 학생들은 매점을 많이 이용했고, 잔반이 문제가 됐다.

온갖 시행착오 끝에 학교급식법이 제정됐고, 학교의 상황에 맞게 전담 영양사·영양교사, 조리원이 오늘도 학생들의 영양과 성장을 책임지고 있다. 급식실에서는 새치기를 잘 잡아내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다. 무상급식, 식사지도, 질서지도를 위해 어른들이 힘쓰고 있는걸 아는지 모르는지 학생들은 오늘도 급식을 허겁지겁 먹는다. 왜냐? 식사를 빨리 마칠수록 노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김경모 현대청운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