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19)]진정한 대화

2021-07-07     경상일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일은 혼자서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술은 혼자서 마시지 않는다. 자기 자신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경지를 닦은 사람이면 몰라도 대화 상대 없이 술을 먹는 일은 힘든 일이다. 술을 먹기 위해서 대화를 하기 보다는 대화를 좀 더 원활하게 하려고 술을 먹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자리의 대화라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술자리의 일체감을 빠르게 만들어 내고자 폭탄주라 불리는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타인과 대화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술자리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나누지 말라는 것도 이러한 주제는 대화의 결말이 우리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1년여 만에 친구들이 모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가면 술자리 대화의 금기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만다. 그날도 금기를 깨는 신호는 전직 검찰총장의 행보에 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개인의 경험과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언어가 객관성을 담보하기도 어렵거니와 정치적 신념이 다른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대화는 시작은 쉽지만 마무리 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다. 결국 한바탕 언성이 높은 대화가 오가고 난 뒤에야 끝이 났지만 어느 누구도 개운하지 않은 대화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흔히 대화를 ‘이끌어 간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대화를 이끌어 가는 일이 대화 당사자 중 어느 한쪽의 의지에 좌우되는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우리가 대화 속으로 빠져든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하나의 말이 다른 말을 낳게 되면서 대화의 흐름이 바뀌고 결론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래서 대화를 통해서 어떤 결론을 얻기 보다는 기대하지 않았던 다른 감정이나 태도를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는 원천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대화를 통해서 타인에게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가장 가까운 부모 자식 간에도 말을 통해서 진심이 상대의 마음에 착오 없이 전달되기를 기원하고 염려한다. 친구 사이에도 몇 마디의 말로써 어려움 없이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고 소통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대화의 수단인 말이 사람의 느낌이나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경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언어의 한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렇게 주장하기도 했다. 모든 개인들에게는 타인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과 같은 것은 없다. 타인의 마음에 온전히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화의 창을 통해서 개인 간의 오해나 사회의 갈등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흔히 서로 간에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에 빠지면 ‘말로 하자’라고 말한다. 폭력이나 완력으로 해결하는 것 보다는 대화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이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니츠의 말처럼 타인과 완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은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지해야 하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말에 의지하는 정치는 대화와 타협이 가장 큰 미덕이라고 한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면서 곳곳에서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것도 타인을 설득하거나 이해하려는 말들이 아니라 상처를 주어 넘어뜨리려는 무기 같은 말들이 여과 없이 생산되고 있다. 이러한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사람이 혼자 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치가 어려운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무엇이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말과 대화의 품격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어디엔가는 있을 것이라 믿는다.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