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24)]미국 독립의 시발점 매사추세츠주와 보스턴시
7월4일은 미국인들에게 매우 뜻깊은 날이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 7월4일에 미국인들은 워싱턴D.C.에서 독립기념일 행사를 즐겼다고 한다. 시가 행진, 성조기 흔들기, 화려한 불꽃놀이, 북적이는 해변 등이 보도되었다. 미국인들은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을 종교와 관련 없는 공휴일 중 최대의 경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좋은 날이 피와 땀 없이 거저 주어진 것은 아니다.
이 역사적인 대사건은 미국인들의 정신력과 투쟁력의 결과이다. 바로 그 중심에 매사추세츠주와 주도인 보스턴시가 있다. 매사추세츠주는 ‘백인 영국계 개신교도’(WASP)의 미국 주류 가치관을 태동시킨 청교도 정신문화의 본향이며, 전제적인 영국정부에 저항하다가 전쟁을 거쳐 독립을 쟁취한 역사의 현장이다.
1)미국의 북동부 끝자락에 위치한 매사추세츠주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 시작은 영국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온 청교도들의 보스턴시 인근 도착이다. 이들은 하선 직전 이곳에서 자유와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를 세우겠다는 ‘메이플라워 서약’을 한다. 이 짧은 서약의 정신은 미국 헌법정신의 골격을 이루게 된다. 백성들 중에서 지도자를 선출하고 일정기간 그 지도자와 법률에 순종하겠다는 민주주의 선거원칙도 포함되어 있다. 매사추세츠주에 정착한 이들이 오늘날 미국인들이 선조로 자랑스러워하는 ‘순례 조상들’(Pilgrim Fathers)이 됐다.
2)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1770년, 영국정부에 불만을 품은 보스턴 시민들과 영국주둔군 사이에 발생한 시비가 유혈사태로 확대됐다. 식민지인들이 주둔군에게 눈덩이를 던졌고, 얻어맞은 군인들은 시민들에게 발포했다. 11명의 사상자가 생겨났고 시민들은 이를 ‘보스턴 학살’(Boston Massacre)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영국과 식민지간의 갈등은 보스턴 시민들이 영국배의 차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린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1773년)으로 발전한다. 이들은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영국정부는 발끈했고 식민지 주민에게 더욱 과중한 세금으로 탄압했다. 반란과 저항 없이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는다는 원리를 경험했기 때문에 나중에 미국인들은 나쁜 정부에 대한 저항권과 언론출판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헌법에 명기했다.
3)‘보스턴 차 사건’으로 촉발된 양자의 갈등은 1775년 영국군과 민병대간의 전투로 악화됐다. 전투가 일어난 곳이 매사추세츠주의 렉싱턴과 콩코드이다. 이리하여 미국 독립전쟁은 시작됐다. 미국인들은 이를 ‘미국독립혁명’(American Revolution)이라고 부른다. 매사추세츠 군인들은 용감하게 싸웠고, 1776년 봄 독립군사령관 조지 워싱턴은 보스턴에서 영국군을 몰아내고 첫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7월4일, 13개 식민지 대표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는 ‘독립선언문’을 최종 승인하고 서명했다. 물론 핍박과 죽음을 각오한 행동이었다.
<미국의 소리> 방송에 따르면 매사추세츠주는 “미국 독립운동의 산실”이면서 “영국과 독립전쟁을 치른 첫 번째 주”이며, 보스턴 시는 “자유를 위한 요람”이고, “미국 헌법도 매사추세츠주 헌법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이 미국인들에게 자유획득을 상징하고 자긍심을 키워주는 날인데 비하면, 한국은 나라가 선 개천절이나 나라를 되찾은 광복절의 의미를 크게 느끼지 못하고 다소 밋밋하게 하루를 보내는 듯 싶다. 또한 매사추세츠주는 신분 차이에 상관 없이 교육을 통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을 키워준 교육의 요람이기도 하다. 다음 회에는 매사추세츠인들의 교육열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