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자도 모르는 ‘화학사고 대피소’ 있으나마나

2021-07-21     정세홍
자료사진

환경부가 전국의 화학사고 대피장소를 알리는 안내지도를 만들어 공개한 지 1년이 됐지만 지역 40여곳의 화학사고 대피소에는 안내 표지판이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다. 특히 이들 대피장소는 현행법상 대피장소 지정·관리 규정조차 없어 무용지물로 방치되고 있다.

20일 찾은 울주군 온산문화체육센터. 이곳은 최근 염산 유출 사고가 발생한 비봉케미칼과 약 1.7㎞ 떨어져 있다. 만약 화학물질 유출로 인한 대피 명령이 발령됐다면 주민들은 이곳을 포함해 인근 7곳의 대피장소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센터를 포함해 대피소로 지정된 곳들은 지진 발생에 대비한 옥외대피장소 안내판만 설치돼 있을 뿐 이곳이 화학사고 대피장소라는 문구는 전혀 없다. 화학사고 대피장소로 지정된 남구의 한 학교는 근무자조차도 화학사고 대피장소가 무엇인지 반문할 정도였다.

앞서 환경부 화학물질관리원은 지난해 7월31일 화학사고 발생 시 대피할 수 있는 전국 화학사고 대피장소의 현황을 안내지도로 만들어 공개한 바 있다.

현재 울산에는 4개 구·군에 44곳의 화학사고 대피장소가 지정돼 있다. 취재진이 사고가 발생한 주변 화학사고 대피장소는 물론 남구 일대 10여곳을 확인해보니 여전히 안내 표지판 등이 설치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지진 대피장소의 경우 지진·화산재해대책법에 따라 지정·관리되고 있지만, 화학 사고의 경우는 관련된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대피장소를 지정해놓고도 안내판 하나 설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번 사고와 관련해 너무 늦게 발송된 늑장 재난 문자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은 지난 17일 0시50분께였는데, 관련 재난 문자가 발송된 건 1시간30여분이 지난 오전 2시38분께였다. 재난문자 내용도 “실내로 대피하고 창문을 닫으라”는 부실한 내용 뿐 어떤 물질이 유출된 건지, 외부는 어떤 상황인지 문자만으로 파악하긴 어려웠다.

무엇보다 화학 사고로 인해 유독물질이 유출될 경우 인근 주민들은 외부 상황이나 대피 방향, 장소 등을 정확하게 인지하기 어렵다. 냄새를 맡고 상황을 인지하면 이미 화학사고에 노출된 뒤다. 재난 발생시 주민들이 의존할 수 있는 게 재난 문자와 대피장소다.

이에 대해 울산시 관계자는 “안내 문자를 늦게 보낸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상황을 파악한 뒤에 보낸 것”이라며 “안내 문자 민원이 많이 발생해 신중하게 보내고 있다”고 해명했다.

화학물질종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울산지역에서 발생한 화학 사고는 6건이다.

현재 환경부는 비봉케미칼 염산누출 사고와 관련 주변 환경과의 연관성 등을 조사하고 있다. 현재 사고 현장 주변의 텃밭과 나대지에서 나뭇잎이 말라 죽는 등 갈변현상이 식별되고 있다. 메스꺼움 등을 호소한 주민들은 여전히 통원 치료 중이다. 정세홍기자·김정휘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