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잃어버린 은하수, 사라진 쪽배
어릴 적 밤하늘을 쳐다보면 수 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펼쳐졌다. 동요를 신나게 부르는데 제격이었던 은하수(銀河水).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요즘은 ‘나 때에는’이라 하면 경원시 된다. 그래도 ‘나 때에는’ 이랬다. 누가 믿겠는가. 우리 마당에 반딧불이 왔다갔다 했다는 것을. 아파트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첩첩시골의 초가집이지만, 내 기억 속의 우리 동네는 황홀한 황금궁전이었다. 목청을 다해 부르든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딱 우리 동네에 걸맞는 노래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 은하수, 그 꽃 대궐을 저승으로 보내 버렸다. 가슴 먹먹한 이 슬픔을 ATM기에서 돈 뽑는 젊은이들이 알까. 전기, 도로, 공장 그 시골이 기계소리로 우렁차지만 맘이 편하지만은 않다. 수만년 금수강산을 누더기로 만들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먹고 살려고 꽃 궁전을 파헤쳐 공장을 짓는 것이 귀한 놋그릇을 엿 바꿔 먹는 꼴 일지도 모를 일이다.
잃어버린 것이 추억에 머물면 그나마도 다행.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문명의 역습이 도사리고 있다. 미세먼지 경보는 일상이고 폭우, 한파, 가뭄에다가 해수면 상승의 뉴스도 둔감해질 정도이다. 호주의 산불, 녹는 빙하, 원전 폭발, 일본의 지진, 이런 것이 남의 나라 말이 아니다. 영화처럼 얼마 안가 헬멧을 쓰고 방호복을 입고 출근을 해야 하거나 아예 지구를 떠나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흙비가 내리는 대낮에 꽃 노래를 어찌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정말 걱정연구가의 기우였으면 좋겠다.
얼마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에서 온실감축목표가 불충분해 정부의 행위가 일부 위헌이라고 결정했단다. 독일 기후변화대응법상 2030년 말까지 미루어 놓은 온실가스 감축목표의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 그들은 지금의 제도가 국가의 미래세대를 위해 자연적 삶의 여건과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독일기본법 제20조의 자유권을 잠재적으로 침해하였다고 보았다. 알다시피 2015년 버락 오바마가 주도해서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었는데, 2020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자 미국이 탈퇴하더니, 2021년 바이든이 다시 가입하는 모양이다. 세계 1위국 미국이 갈팡질팡이니 다른 나라들이야 오죽하랴.
각국의 정부도 나름의 노력은 한다. 일례로 온실가스저감조치로 전기차나 수소차 구입자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대해 생각해보자. 국내 등록자동차가 약 2300만대인데 만약 모든 차를 전기차나 수소차로 바꾸었다 치자. 그 전기와 수소를 만드는데 드는 온실가스는? 그 전력 조달은? 혹자는 원자력으로 전기를 만들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지 않을까 제안한다. 하지만 인간의 일은 완벽이 없다. 원전사고를 보라. 그렇게도 안전하다면 진작에 서울 당인리 발전소를 원전으로 바꾸었겠지. 죽고 병드는 것은 자연인(自然人)이지 정부나 기업이 아니다.
초상집의 한마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지구촌 사람 모두가 경각심을 갖고 연대해 살길을 찾자. 곳간 그득하고 배 부르다고 현인이거나 선진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편리함이 미래의 행복이 될 수는 없다. 그 비싼 강남 아파트도 언젠가는 쓰레기이고, 넘쳐나는 페트병도 돌고돌아 후손에게 돌아온다. 어른들은 입만 열면 ‘부모가 자식 죽이는 일을 하겠는가’라고 반문한다. 일부러야 그러시겠는가. 하지만 로마왕조나 중국황실의 후예 중에 구걸연명(求乞延命)하는 자가 왜 없겠는가. 오늘의 행복이 미래세대의 불가역적 불행의 이유가 되면 아니 된다. 이것을 막아야 어른이고 어버이다.
전상귀 법무법인현재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