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김경수 전 도지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과 선거의 공정
대의민주주의라고 하면 국민이 직접 정치적 결정을 하지 않고, 그 대표를 통해 간접적으로 정치적 결정을 하는 민주주의제도이다. 이런 대의민주주의를 영 편치 않게 느끼는 사람이 더러 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도는 높아졌는데, 그런 사람들에게 간접적인 정치는 충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직접 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런 비유를 해보려고 한다. 문명 이전에 인간은 필요한 것을 모두 직접 채집하고 사냥하였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하면서 인간들은 자신이 잘만드는 것만 생산한다. 그래서 생긴 잉여(剩餘)를 다른 사람에게 주고 자기가 필요한 것과 교환한다. 교환을 위해 화폐도 고안한다.
정치에도 비슷한 비유가 가능하다. 작은 부족에서는 모든 부족원이 모여서 직접 정치적 의사를 결정한다. 그러나 국가가 생기고, 사회가 복잡해지면, 그러한 의사결정방식을 더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정치라는 제품을 잘 만들어 내는 정치인과 정당이 등장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제품을 광고하며, 국민에게 이것을 잘 팔려고 한다. 국민들은 매번 정치적 결정을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자신이 원하는 개인 관심사에 몰입할 수 있다. 좋은 정치제품은 투표라는 화폐로 구입한다. 이런 정도의 비유면 대의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국민이 쓰고 싶지 않은 정치제품을 쓰도록 강요하면 그것은 독재이다. 국민에게 뭐든 다 해주겠다고 속이고 썩은 정치제품을 구매하게 하면 그것은 포퓰리즘이다. 최상품을 구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려면 정치제품을 제대로 평가하고, 고를 수 있어야 한다. 토론과 비판으로 어떤 정치제품이 좋은지를 판단하고, 선거를 통해 제대로 된 정치제품을 구매한다. 그래서 선거에 대한 부정은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해된다.
김경수 전 도지사가 관여한 댓글 조작은 정치소비자를 속이는 행동으로, 대의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공격으로 이해될 수 있다. 댓글 조작은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상대로 정치제품에 대한 사기를 치는 것이고, 그래서 심각한 것이다.
선거제도란 제대로 된 정치제품을 선택하는 유일한 구매방법이다. 선거가 잘 관리되어야 하고, 부정이 없어야 하며, 신뢰를 잃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그래서 선거에 부정이 있으면 단호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이번 김 전지사에 대한 형은 그 사안에 비해 결코 무겁다고 볼 수 없다. 그보다 규모가 형편없이 작았던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원세훈 국정원장이 받은 형량이 그의 두배이고, 건국 초기에 3·15부정선거를 주도했던 내무부장관 최인규는 사형을 당했다. 더하여 김 전 지사와 정치동일체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에 대해 수사가 확대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선거는 모든 국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그 공정성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면 철저하고도 신속하게 검증해 국민의 신뢰를 원래대로 돌리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법원이 선거관련 소송들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지연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필요한 의혹만 증폭시킬 여지가 있다.
특히 울산시장선거에 대한 청와대 개입의혹에 대한 재판은 그 재판을 시작한지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 끝을 기약하기 어렵다. 그러는 사이에 의혹의 장본인인 현 울산시장의 임기는 다 채워지고 있다. 임기가 종료되는 시점이 재판이 끝나는 시점보다 더 먼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그 경우도 시장이 소송에 오랜 기간 발이 묶여 시정에 전념하지 못한 손실이 있다. 만약 유죄가 선고된다면 선거소송의 지연이 선거자체를 왜곡시킨 결과가 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내년에는 대선과 지선이 겹쳐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될 것이다. 국민이 바른 정치제품을 선택하고 투표로 그것을 잘 구매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가 잘 관리되기를 희망한다.
김태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