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철학산책(31)]공부는 어렵다
전문 연구자가 비전문가에게 자신의 연구 분야를 소개할 때 늘 듣는 말이 있다. 너무 어렵네요.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연구자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난감할 수밖에 없다. 자기 분야에서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개념, 원리, 수식 등이 학회나 대학 밖으로 나가는 순간 불통 유발자가 되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시민강연장에서 그런 말을 종종 듣는다. 철학을 온라인상에서 좀 더 쉽게 전하기 위해 만들고 있는 유튜브 영상의 반응을 통해서도 듣는다. 이 말은 평생 내가 들어야 할 말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도 하고 싶은 말은 있다. 공부는 원래 어렵다는 말이다. 사실 많은 분야가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시대이지만, 예술로서 사진을 찍고자 한다면 그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알게 된다. 작고 가벼운 공으로 가볍게 운동하려고 방문한 탁구장에서 탁구라는 운동이 얼마나 많은 걸 요구하는 운동인지 알게 된다. 조금만 살펴봐도 상황이 이러한데, 2000년의 역사를 가진 철학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식으로 가득한 물리학과 달리 철학은 언어로만 하므로 언어의 층은 물리학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두터울 수 밖에 없다.
어떤 주제는 한 학기 강의로도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다. 보통 1시간40분 정도인 강연 한 편으로 철학의 문제를 완벽하게 이해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질의응답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자 하지만, 질문이 많이 나와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
뭐든 너무 쉽게 배우려고 하지 않을까. 피아노를 배우는 과정이 험난하고 인내를 요구하듯, 철학 공부도 그렇다. 책도 많이 읽고, 토론도 해야 하지만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 전문가의 지도도 꾸준히 받아야 한다. 전문 철학자도 자기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르는 문제도 많다. 그리고 전문 분야조차도 자기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잘 안다. 그런 이유로 필자는 ‘5분만에 이해하는…’ ‘하루만에 이해하는…’ ‘한 권으로 이해하는…’과 같은 표현을 신뢰하지 않는다. 공부의 길은 정직해야 하고 요령을 찾아서는 안 된다.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