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진정한 다음단계가 궁금하다
복싱 체육관을 재작년 말부터 운영하고 있는 지인과 며칠 전 만났는데 이런 말을 했다. ‘처음으로 방학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말이다. 학생들이 신규관원으로 계속 들어오기에 ‘아, 이게 방학시즌이구나’라고 근 2년만에 느꼈다는 것이다.
확진자 수가 얼마 전 최고를 기록했지만, 일상생활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그걸 따라가지는 않는 듯하다. 예전엔 ‘방역수칙을 지키는 선에서 허용된 일’이라 하더라도 꺼림직하여 선뜻 못했다면, 이젠 그런 신경을 쓰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다들 많이 익숙해진 게 아닐까 한다. 통제에 지쳤다는 말들도 여기저기서 많이 들린다. 의료현장의 중압감과는 별개로 우리가 그동안 일상생활을 통제하며 들인 방역 노력에 비해 성과가 없다는 분위기가 은연 중에 깔려있는 듯하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와 공존을 택하겠다고 선언한 국가들이 주요 언론에서도 다뤄지기 시작했다. 싱가포르와 영국이 대표적인데, 사실 백신이 나오기 전인 작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향의 대응을 해야 한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있었다. 코로나19의 치명률은 특정 연령대에 몰려 있고 이렇게 사람들의 생활을 옥죄어서 나오는 예방효과는 생각보다 크게 없는데다 사회적 부담만 커지니 치명률이 높은 연령대만 관리하고 병과 공존하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는게 그들의 말이다. 소수의견이지만 과학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건 아니기에 필자 역시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인도에서 델타변이가 갑자기 확산되는 걸 본 후 개인적으로 아직은 이른 생각이라고 판단했다.
공존이란 방법은 백신 접종을 시작한 이상 그 비율이 담보가 된 상태에서 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그게 담보가 되어 있는 상태다. 접종을 시작한 이상 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이 상황을 안정화시키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에 필자가 속한 울산병원도 그에 일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따로 건물 하나를 접종센터로 지정해 가능한 모든 종류의 백신들을 다루는 등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이 다음은 무엇이 있을까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여전히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왜 무증상 감염자는 아무런 증상이 없는지, 왜 어떤 백신은 특정 부작용이 생기는 건지 등등에 대해선 ‘이렇지 않을까’ 하는 가설들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들 보다 정말 궁금한 건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어떤 전략을 택할 건지이다. 과거 천연두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적이 있지만, 그를 제외하면 특정 유행병을 완벽하게 종식시킨 예는 인류사상 거의 없다. 공존을 이야기하는 국가든 아니든 이런 가정을 두고 생각해야 한다며 논의 중이지만 현재 우리는 집단면역, 거리두기, 하루하루의 확진자 수와 백신을 접종하라는 이야기만 있을 뿐, 장기적으로 어떤 방식들을 고려 중이라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가장 거시적인 이야기는 11월까지 열심히 접종률을 높여 집단면역을 이루겠다는 것 정도지만 그 후의 선택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없다. 만약 가장 현실적인 선택지가 있다면 그에 대한 제시가 필요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을 바탕으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것들이 지켜져야 하는지 지금부터라도 논의가 있었으면 한다.
확진자 수가 최고조를 찍고 있지만 우리의 상황은 ‘선지자의 딜레마’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선지자는 미래에 일어날 재앙을 정확히 예측해 말해야 하나 동시에 예측한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하기에 결국 예측한 그 일이 현실에 안 일어나는 딜레마가 생기게 된다. 즉 우리가 해온 노력은 소용이 없었던 게 아니라, 현재 확진자 수가 2000명에 가까운 건 2만명이 될 수도 있었던 최악의 상황이 오지 않도록 노력을 하고 지켜온 덕에 만들어진 최선의 현실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만큼 전체적으로 방역수칙을 잘 지켜온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다들 놀라울 정도의 인내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이 이후 필요한 것은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전문가들이 진지하게 고민해 국가차원에서 계획을 제시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리두기의 단계가 아닌, 진정한 다음 단계에 대한 논의가 궁금하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