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20)]확고한 신념

2021-08-04     경상일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젊은 날에는 흔들리지 않은 신념과 굳은 의지가 삶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신속하게 판단하고 자신 있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러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한 적도 많았다. 특히 국가나 사회의 구성 원리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20대 초반에는 막걸리 잔을 앞에 두고 민중이나 자본과 같은 거대한 담론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친구들을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또 그 친구들이 읽고 있는 마르크스와 같은 사회주의 경제학자의 이론을 반드시 알아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결국 이 결심은 성공에 이르지 못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한 경제학 원론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자신의 주장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던 그들의 태도는 젊은 시절 내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확고한 신념과 단호한 언어를 가지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였으나 자신의 신념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갖는다는 것이 쉽지 않아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도 모든 일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주제라도 터놓고 이야기 하기는 쉽지 않은 상대라고 여긴다.

개인이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다 알 수는 없다. 그래도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판단을 해야 하고 닥친 일이나 만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특히 언론에서 이슈가 되는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의견이라도 말할 수 있어야 타인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고 사회 구성원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세상을 움직이는 중요한 일에 개인적인 의견을 가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다. 문제는 언제나 자기의 판단을 확신하고 신념화 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신념은 마음속에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만드는 일이다. 흔히 프레임이라고 불리는 판단의 틀을 가진다는 것은 완벽하지 않는 정신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인간에게는 필요하고도 효율적인 일이다. 그러나 이 편리하고 효율적인 정신 작용을 개인이나 사회를 위해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념의 성질과 한계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한 독서를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이 가지는 바깥 세상에 대한 신념은 자연의 질서나 사회의 원리에 완벽하게 부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것이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진단일 경우에는 더욱 더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험성을 망각한 종교나 정치적 신념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악을 만들어 왔는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인종에 대한 그릇된 신념을 가진 히틀러가 600만의 유태인을 학살한 것은 불과 수십 년 전의 일이고 그 상처는 인간이 같은 종으로 존재하는 한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종교적 신념을 위해서 다른 집단을 살상하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확신은 거짓말 보다 더 위험한 진리의 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예는 수없이 많다. 독단적인 확신에 의존하면 확고한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갖게 되고 이와 함께 살아갈 힘을 얻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다양한 확신들을 자유롭게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실천해야 할 때가 지금인 것 같다. 공영방송은 물론이고 모든 언론매체들이 우리나라를 이끌어 갈 적임자가 누구인가를 놓고 무수히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결국 우리는 자기의 정치적 신념에 맞는 말들을 골라서 듣고 그 말들로 자기의 신념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한번만이라도 자기의 정치적 신념을 내려놓고 상대편의 말들을 깊게 경청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불가능할 일일까.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