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울산판 도가니 사건(?)

2021-08-05     경상일보

울산의 유명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울산은 전국 뉴스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으로 시장과 전 경제부시장이 수사를 받고 시청이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한동안 전국 톱뉴스를 장식했다. 또 실업률, 고용률 등 각종 경제지표도 전국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와중에 영화 ‘도가니’와 유사한 사건이 울산에서 발생했다.

영화 ‘도가니’는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저지른 실제 사건을 영화화 한 것이다. 당시에도 충격적이었지만 지금까지도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다.

얼마 전 울산의 한 장애인 교육시설의 교장이 장애인 학생을 1년 가까이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조사가 시작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해당 교장은 울산전교조지부장을 역임한 현 시민단체 대표이자 2010년 울산교육감 선거 당시 노동시민사회단체에서 ‘울산교육감 범시민후보로 추대’되어 출마까지 한 인물이다. 이 교장은 또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노옥희 교육감후보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도 맡았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인권변호사 출신 송철호 울산시정부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송 시장은 올해 1월 조직개편을 하면서 ‘과’ 단위의 인권담당부서를 신설하고 현판식까지 했다. 단일 업무로 ‘과’ 단위의 부서를 신설하고 현판식까지 하는 경우는 정말 이례적이다.

그만큼 평소 인권을 중시해 사람 중심의 시정 철학을 펼치고 있다는 시장의 의지를 시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없던 부서를 새로 만들고 인권을 시정 핵심가치로 내세웠으나, 결과는 그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장애인 학교에는 울산시와 울산시교육청에서 매년 인건비 등 적지 않은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고 한다.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두겠다는 시장과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교육감의 슬로건이 너무나 무색해 보인다. 인권도시 울산의 장애인 인권이 위험하다고 느끼기에 충분한 사건이다.

이쯤 되면 울산시장과 교육감이 시민들 앞에 나와서 머리 숙여 사죄부터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런데도 아직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울산시는 사건이 일어나고 파장이 커지자, 해당 시설에 대해 자체조사를 하겠다고 한다. 또한 관내 90여곳의 장애인시설을 대상으로 성·인권 실태 전수조사도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울산시 주관으로 실시하는 자체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의구심이 앞선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겠다는 꼴이다.

얼마 전 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으로 시작된 공직자 투기의혹을 울산시에서 자체조사 하였으나 단 한건도 밝혀내지 못한 채 ‘맹탕조사’ ‘면죄부조사’라는 비난만 받고 끝나버린 사실을 시민들은 기억하고 있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셀프조사’를 또 하겠다니 도대체 누구의 발상인지 어이가 없다.

조사를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조사주체는 울산시가 아니라 공신력 있는 제3의 기관에서 주도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조사결과도 가감 없이 소상하게 시민들에게 공개하여야 마땅하다.

또한, 장애인시설 전수조사에 앞서 이번 사건 발생 경위부터 소상히 밝혀내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학교장은 해당 학교에 9년 동안이나 재직해 왔고, 피해 학생에게는 무려 1년 가까이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시와 울산시교육 당국에서는 추가적인 피해 사실이 없는지를 공신력있는 기관을 통해서 면밀히 조사할 의무가 있다. 가해자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전수조사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울산시장과 울산시교육감은 시민들 앞에 석고대죄하는 자세로 피해자의 안전한 삶의 회복과 사건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지금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서 이런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고호근 울산시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