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우 경제옹알이(7)]학점 인플레이션: 교수의 편의가 학생을 망친다
요즘 졸업하는 대학생들은 힘들다.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취업이 어려우니 더더욱 학점에 매달리게 된다. 대학생들의 꿈의 학점은 4점대이다. 학점의 앞자리가 3자가 아니라 4자라는 것은 확실히 달라 보인다. 취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과의 학점과 취업과의 관계를 분석해 보니, 아니라는 결론을 쉽게 얻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모른다. 수강신청 기간에는 좀 더 쉽게 A를 주는 수업에 학생들이 몰린다. 4점대의 학점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 같은 마법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리라.
최근 몇 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과에서는 매년 50명이 조금 넘는 학생들이 졸업을 한다. 그중 10명이 넘는 학생들이 4점대의 학점으로 졸업을 한다. 4점대의 학점을 찍어도 50명 중에 10등, 상위 20%에 겨우 턱걸이를 했을 뿐이다. 과거에 대학을 다녔던 세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전국에 많은 대학과 학과가 있음을 생각하면, 4점대의 학점은 사실 그리 큰 변별력이 없다. 물론 3점대의 학점보다 나아 보일 테지만, 학생들이 생각하는 만큼의 효과는 없다.
4점대의 학점이 일자리의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을 취업과 학점의 상관관계는 보여준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의 학점만을 알고 있을 뿐 본인이 몇 등인지는 잘 모른다. 알면서, 애써 무시하는 것도 같다. 학점의 앞자리가 4자가 되어도 상위 20%에 턱걸이 했을 뿐이며, 취업이 잘 되지 않는다는 데이터에는 집중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양질의 일자리의 비율은 7.4%다. 대기업과 공공부분, 조직화된 노조를 가지고 있는 일자리의 비율로, 지난 20년간 큰 변화가 없었다. 앞으로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학점 인플레이션은 계속될 확률이 높다. 그래도, 학생들은 3자보다는 4자가 좋지 않겠느냐는 본인이 믿고 싶은 논리만을 계속 본다.
실제로 학점과 취업과의 관계를 분석해 보니, 가장 위험한 학점은 3점대 후반의 학점이었다. 3점대 후반의 학점을 만드는 데는 사실 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4점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높은 학점이다. 대부분의 과목에서 A를 받았다는 말이고,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증거로 보인다. 하지만 학점 4점대를 찍어도 상위 20%에 겨우 턱걸이 하는 상황에서, 3점대 후반의 학점은 기업의 인사담당자의 입장에서는 큰 장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눈을 낮춰서 중소기업에 지원하기도 어렵다. 3점대 후반의 학점은 본인에게는 큰 노력의 성과이고, 3점대 후반의 학점을 가지고, 중소기업에 간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하기는 힘들다. 50여명의 졸업생들 중 중간등수인 25등 정도로 졸업하는 학생의 학점이 3점대 중반을 훌쩍 넘긴다는 통계를 학생 본인은 알기가 힘들고, 안다고 할지라도 외면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 가장 취업이 어려운 학점대가 된다. 실제로 학점과 취업과의 관계를 분석하면 학점이 낮아질수록 오히려 취업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관찰된다. 학점이 낮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계약직이나 비정규직, 영업직으로 취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은 학점 인플레이션에 있다. 학점을 잘 주면 교수는 편하다. 학생들도 좋아한다. 나만 학점을 잘 주는 것이 아니고 다른 교수들도 다 그렇게 하니, 도덕적 죄책감은 외면해도 된다. 그리고 다른 학교도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하니, 나만 학점을 짜게 주면 학생들은 취업에 불리하게 된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합리화 할 수 있다. 학점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줄어든다는 것은 덤이다. 수강하는 학생들도 늘고, 폐강의 위험도 낮아지고, 강의평가도 좋아질 확률이 높아진다. 대충 가르쳐도 학점만 좋게 주면 큰 문제가 없다.
오랫동안 문제가 될 것이라 지적되어 왔고, 이제는 정말 큰 문제가 됐다. 대학에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대평가를 강화했지만, 실질적인 효과는 미미하다. 상대평가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상대평가를 철저히 지켜도 평균평점은 여전히 높다. 또한 상대평가를 철저히 지켜서 오는 긍정적 효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아예 나타나지 않을 확률도 꽤 크다. 하지만 상대평가를 철저히 지켜서 오는 부정적 효과는 즉각적이다. 나타날 확률도 높다. 미국의 한 교수는 학점 인플레이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준 공식학점과, 학점 인플레이션이 없었다면 주었을 낮은 학점을 학생들에게 동시에 알려주었더니 학생들도 긍정적이었다는 결과를 보고한다.
몇몇 기업에서는 입사원서에 학점을 요구하지 않기도 한다고 하니, 기업들도 이제 학점이 변별력을 잃었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인지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학점이 능력의 척도가 아니라 성실성의 척도라는 점은 예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대학의 기능은 교육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통해 성실성을 측정해 주는 것이라는 경제학 이론은 꽤 오래 전에 제기되었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들이 배움이 아닌 학점에만 집중하는 것은 이해가 가는 점이 있다. 하지만 학점 인플레이션은 대학의 성실성 측정 기능까지도 무효화시켜버렸다. 그래도 대학에는 아직 젊은 남녀들이 모여서 대학생활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기에, 대학 졸업장이라는 공식 증명서를 수여하는 기능이 있기에, 대학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현실적으로 많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해도, 과거 시험문제의 정답만을 외워서 좋은 학점을 받으면 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학생들이 교수에게 왜 잘 가르치지 않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면 변화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학점을 주는 교수에게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무엇을 배웠는가 하는 실질적 배움이 아니라 학점이라는 형식적 숫자에만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학생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것은 사실 교수의 잘못이다. 그리고 실질적 측면이 아닌 형식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문제다. 학점보다 실질적인 배움을 중시하게 하는 일, 어려울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하는 사람만 바보가 될 수도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라 했다. 학생의 잘못은 사실 대부분이 선생이 잘못 가르친 탓이다. 나부터 반성하자. 공식적인 학점과 학점 인플레이션이 없는 비공식 학점을 알려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변화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