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25)]매사추세츠 청교도들의 교육열
미국 청교도란 1620년과 1630년대에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에서 건너와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지역에 정착한 개신교도들이다.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처음 미국에 온 102명의 청교도들은 1년내에 약 절반이 사망했다. 이들은 경제적 이유로 미국 남부에 온 사람들과 다르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을 택한 사람들이었으며, 영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보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이들이 ‘세상에서 맑게 살려고 한다’는 뜻에서 청교도(Puritan)라고 부른다. 청교도들은 미국 초기역사에서, 매사추세츠를 중심으로 한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미국 건국과 독립의 요람으로써, 그리고 교육의 고장으로써 큰 공헌을 남겼다.
인본주의 면에서, 청교도들은 과거에 국왕이 주인이었던 나라에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세우려고 시도했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정신을 심어주었고 이는 정치적으로 미국독립선언과 독립전쟁에 정신적 기틀을 마련했다. 경제면에서, 프로테스탄티즘(개신교주의)의 윤리를 자본주의 정신에 연결시킴으로써 자유경제질서의 틀을 다졌다. 교육면에서, 청교도들은 거친 미국땅 이주후, 빈곤과 질병 가운데에서도 강력한 시민교육을 실시했고 초중등학교와 대학을 세우는데 앞장섰다. 민주주의체제 아래 직업교육과 실용주의 교육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시킴으로써 19세기 미국의 경제와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세기 후반에는 미국 국내자원개발, 대륙횡단철도 건설, 자동차 개발 등 교통기관의 발달과 함께, 신산업인 석유업, 철강업 등 거대 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산업자본의 발달은 교육을 통한 양질의 노동자가 공급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0세기초 이후에는 발명가 에디슨 덕분에 미국이 전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이 되어갔다. 현재 한국도 예로부터 내려오는 한국인의 교육열을 바탕으로 미국의 청교도 가치를 접목해 산업과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가 됐다.
권동택(2009)에 따르면, 청교도들은 교육활동을 경제활동 못지않게 중요시했다. 특히 매사추세츠주에서는 곤궁한 시절에 초·중등학교를 개설해 시 재정을 지원하도록 했으며, 읽기, 쓰기와 종교 등을 가르치는 학교를 각 읍에 설치하는 법률을 1624년 통과시켰다. 비록 소수의 학교만이 설립되었지만, 청교도들의 교육에 대한 강력한 의지 천명이 미국땅에 정착한 지 4년 만이라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매사추세츠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현실세계에 실현시키는 방법으로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을 매우 중시했다. 이들은 1635년에 미국 최초의 공립학교인 보스턴 라틴 스쿨을, 1636년에는 미국 최초 대학인 하버드 대학을 설립한다. 1639년에는 최초의 초등학교가 개교한다. 1647년에는 법률로 의무교육의 기틀을 마련한다. 50가구 이상의 마을에는 읽기와 쓰기 유급 교사 임명하기, 100가구 이상의 자치구에서는 대학준비 문법학교 운영하기 등이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물리기도 했다.
매사추세츠주에는 세계 넘버원 하버드대학 외에도 최첨단 과학의 산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매사추세츠대(UMass), 앰허스트 칼리지 등 유명대학을 포함해 170개가 넘는 대학(2년제 이상)이 있다. 주 전체 인구가 약 700만 명인데 대학(원)생 수는 50만 명이 넘는다. 가히 교육의 도시라고 부를 만하다. 청교도들은 대단한 교육열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신분에 상관없이 자유-평등을 위한 민주주의 교육기회 제공이라는 집념이 오늘날의 세계 최강 미국을 만들었다고 본다. 2000년이후 노벨상 수상자 배출 1위와 2위 대학이 모두 매사추세츠주에 있다. 최근에는 생명공학-제약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코로나19 백신제조에 성공한 모더나 본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핵심인물은 MIT 교수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