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철호의 反求諸己(20)]다독(多讀)은 다독(多毒)이다

2021-08-20     경상일보

책은 많이 읽는 게 중요하지 않다. 제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많이 읽는다는 것은 다독(多讀)을 뜻하고, 제대로 읽는다는 것은 정독을 뜻한다. 다독은 이 책 저 책 가리지 않고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이고, 정독은 뜻을 새겨 가며, 글의 참뜻을 바르게 파악하며 읽는다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유하면서 책을 읽는 것이 필요하다. 사유 없는 책 읽기는 주마간산이 되기 쉽다. 그런데 요즘에는 주마간산식 책 읽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 다독을 자랑하는 사람도 많다. 물론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다독을 하는 사람도 있다. 문제는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않으면서 그저 많은 책을 읽었다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요즘은 인문학의 시대라고 할 만큼 인문학이라는 말이 흔하다. 덩달아 독서라는 단어도 흔하다. 그런데 실제 말만큼 인문학의 시대인지는 의문이다. 독서와 독서토론이라는 말의 흔함만큼 독서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인문학은 내실은 없고 구호만 휘황한 것 같고, 독서는 겉치레만 찬란한 것 같다. 인문학의 의미도 모르면서 인문학이라는 말을 붙이고,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인문학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슨 책을 읽었다, 몇 권의 책을 읽었다는 것이 어떤 소용이나 가치가 있을까.

율곡은 <격몽요결> ‘독서장’에서 이치를 연구하기 위해 먼저 독서를 해야 하며, 독서를 하되 반드시 책 한 권을 선택한 후 충분히 뜻을 헤아리며 읽어 통달한 뒤 다른 책으로 바꿔 읽을 것과 다독에 빠져서 쓸데없이 힘을 소모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퇴계는 한 권의 책을 다 이해할 때까지 읽고 사유하기를 반복하여 그 책이 너덜너덜하고 해어져서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퇴계가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열 권을 책을 읽은 사람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퇴계보다 뛰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율곡도 그렇다. 진실로 무엇을 했다, 많이 했다는 것보다는 어떻게 했다, 제대로 했다가 중요하다. 오늘날은 특히 그렇다.

송철호 문학박사·인문고전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