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전의 가치를 묻다
지난 6월 경기도 이천의 한 물류센터에서 발생한 작은 불씨는 건물 전체로 퍼져나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켰다. 이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일터를 잃었고 우리의 가슴 속에 크나큰 상처를 안겨줬다.
축구장 15개 규모의 창고가 사흘간 끊임없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보여준 광경은 처참 그 자체를 넘어 우리에게 안전의 가치를 되물어보게 한다.
흔히들 기업의 경제적 이윤 추구와 안전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안전을 위해 우리가 치르는 비용은 기업의 수익을 갉아먹으며 성장의 동력을 악화시키는 하나의 장애물로 취급되었다. 이와 같은 사회분위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은 세계경제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을 비추는 손전등을 잠깐 옆으로 비춰본다면 이면에 숨겨진, 그 영광을 위해 희생한 숭고한 생명들을 마주하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안전경시의 풍조는 질긴 생명력을 가지며 사회 속에 깊이 박혀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안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을 바꿔줄 자료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지난해 9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의 산업재해율이 1% 증가할 경우 연평균 영업이익률은 최대 1.2%p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바탕으로 위험으로부터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인 ‘안전권’을 주장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고자 울산소방본부는 울산지역의 고층 및 대형 건축물에 적합한 소방·피난·방화시설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건축계획 단계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특히 지난해 남구 주상복합 화재를 계기로 금년 말 울산에 도입되는 70m 고가굴절사다리차의 활동 높이를 고려하여 기존 11층 이하에 설치되어 있는 소방관 진입창을 70m 높이의 층까지 설치할 예정이다. 또한 화재 발생 시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호스릴 옥내소화전 설치 대상을 아파트, 요양병원으로 확대하는 등 소방접근성 및 소방시설 기준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안전의 가치가 변화하면서 건축물의 안전과 직결되는 소방시설 시공에 관한 사항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소방시설공사 분리발주제 도입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개정 소방시설공사업법이 지난해 9월부터 시행되면서 소방업계가 적정한 금액으로 공사계약을 체결하여 시공 품질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부실시공에 대한 책임업체 규명도 명확해져 소방시설의 안전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법과 제도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듯 시민들 모두 안전을 중시하는 인식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주변의 위험요소를 찾아보며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고, 평소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 최종적으로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이 될 것이다.
특히 기업에서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고 효율적인 소방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소방대상물에 상주하는 자위소방대원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는 만큼 주기적인 훈련과 체계적 관리를 통해 사고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선 기업의 안전에 대한 관심이 절실히 필요하다.
위험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안전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이 드러난다.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투자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기업의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안전은 비용의 낭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다.
정병도 울산시 소방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