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필자부터 고소하라
제13대 국회(1988~1992년) 어느날, 경남에 지역구를 둔 P국회의원은 뇌물수수혐의로 사정당국에 의해 사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YS(김영삼)가 총재로 있던 소수 야당 소속이었던 그는 농촌재건 운동가인 이른바 ‘4H’출신으로 청렴 의원으로 평가 받았기에 충격파가 더욱 컸다. 창원의 한 비닐농가에서 밤새 기자와 통음한 그는 “결코 뇌물을 받은 적이 없소. 하늘에 맹세코 그런일이 없다”고 절규했다. 눈물로 억울함을 호소한 그는 “만일 구속되더라도 나의 국회 비서관이 수상하니 꼭 취재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그는 구속 수감됐다. 끈질긴 추적 취재결과, 비서관에 의한 ‘프락치’의혹으로 근접됐다. 총선당시 치열한 경쟁을 펼치다 패배한 상대측이 교묘하게 심어놓은 것으로 의심받는 ‘프락치비서관’이 P의원의 일상을 낱낱이 기록했고, 그것이 ‘정적’에게 건네져 사정당국에 포착된 것. 상대측은 국가최고 정보기관장의 친동생이었다. 보도가 전국 유력지로 번지면서 ‘P의원 구속 공작사건’으로 확대됐다. 상대의 정치생명은 완전 끝장났다. P의원의 뇌물수수 의혹은 재판과정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고, 이후 암으로 고통받다 중학생 아들과 아내를 등지고 세상을 떠난 비운의 정치인으로 기록되고 있다.
또 다른 정치적 사건은 2003년 A정당 시당위원장이었던 K국회의원.
그는 서울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기자와 만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A구 보궐선거 공천심사가 진행중 누군가 ‘사과박스’를 아파트로 가져왔는데 뜯어보니 돈이었다. 곧바로 따라나가 엘리베이터안으로 던져버렸다.” K의원 발언의 배경은 ‘누군가 돈을 가져와도 받지않고 곧바로 돌려 보낼 만큼 깨끗하다’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됐다. 하지만 기자에겐 ‘사과박스에 담은 현금을 누가 가져왔을까’에 꽃혔다. 이틀후 본보 1면 톱기사로 의원 실명과 함께 ‘거액 공천로비의혹’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 됐다. 사정당국은 곧바로 내사에 착수했다. 당시 14명의 공천신청자들을 상대로 계좌추적 등 전방위 수사로 확대됐다.
정치권력에 대한 이러한 보도 외에도 5대 권력기관(청와대·국회·법원검찰·경찰청·국세청)의 ‘비밀스런 의혹’과 맞딱뜨릴 경우, 취재보도 유혹을 뿌리치긴 어렵다. 하지만, 언론 악법이 통과되면 정치권력에 의한 법적, 심리적 억압으로 취재보도에 상당한 제약에 직면할 수도 있다. 언론단체와 야당, 대한변호사회는 물론 진보적 언론단체에서 조차 악법이라고 규정한 언론중재법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등 범여권 강행으로 국회 처리가 사실상 9부능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애초 본회의 처리를 예고한 25일 새벽 4시 법제사법위 기습처리에 이어 본회의에서 강행하려다 일단 연기, 숨고르기에 돌입한 형국이다. 171석의 거대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기습 통과가 확실하다.
악법의 핵심은 오보에 대해 ‘5배 징벌적 손해배상’이다. 특히 언론사의 전년도 매출액이 배상액과 연동하게 함으로써 손해배상은 기자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닌 언론사 경영에도 치명적 손상을 주게된다. 때문에 권력 또는 비리를 감추기 위한 ‘힘 있는 자들’이 언론을 상대로 전략적으로 무조건 소송을 걸어 놓으면 어떻게 될까? 기자들은 물론 언론사 마저도 위협을 느끼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결국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꼴이다. 정치권의 이러한 행태와 반대로 자신들이 또 다른 무소불위의 권력에 의한 희생양 혹은 정치 공작 등으로 치명상을 당할땐 기자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지도 궁금하다.
로마의 법학자 도미티우스 올피아누스는 “가혹한 법도 법”이라고 했고,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 역시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비록 정치권이 만든 악법이 통과될지라도 법은 법이다. 하지만 ‘가혹한 법과 악법’이 두려워 국민 알권리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권력의 각종 의혹에 대해 양심을 건 취재보도에도 불구하고 악법으로 원천 차단하고 싶거든 ‘오보’라고 우겨라. 그런 뒤 필자부터 고소하라. 비록 ‘깡통’을 찰 지언정, 비열한 정치권력에 굴복하는 비겁한 기자는 될 수 없다.
김두수 서울본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