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플랫폼 기반의 스타트업

2021-09-03     경상일보

한 세기 넘는 동안 규모의 경제는 경쟁우위로 군림해 왔다. 규모의 경제는 한 기업이 거대한 규모를 구축해 모든 우위를 축적하고 나면, 그 규모는 경쟁자들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벽이 되었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가는 4차산업혁명의 세계는 열성적인 고객들로 이루어진 틈새시장을 섬기는 전략이 그럭저럭 만족한 고객들로 이루어진 대중시장을 상대하는 규모의 경제 전략을 능가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에게 맞추어진 개인맞춤형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버가 오랫동안 입지가 탄탄했던 택시 회사들을 뒤흔들거나, 에어비앤비가 메리어트처럼 역사 깊은 거대한 호텔 기업들마저 따돌리는 데서 이런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이제는 탈규모화가 전반적으로 진행되면서 모든 경제 분야를 해체하고 있다. 탈규모화는 소유에서 벗어나 서비스 이용으로 나아가는 변화를 수반할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모바일), 페이스북(소셜네트워크), 아마존 웹서비스(클라우드 플랫폼) 덕분에 우리의 일과 삶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 가면서 데이터의 양이 폭증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오랫동안 플랫폼을 만들어 왔다. 고속도로망과 인터넷뿐 아니라 이동통신망,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 소셜네트워크도 이러한 플랫폼이다. 플랫폼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는 우리 대신 일을 해주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많이 구축할수록 개별 기업이나 창업자가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고, 홍보하고, 유통하기 위해 혼자 애쓸 필요가 없다. 스마트폰, 무선통신망, 소셜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덕분에 개인은 노트북만으로도 컴퓨팅 집약적인 디지털 기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아마존 웹서비스에서 두어 가지 설정을 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입력하기만 하면, 전 세계를 상대로 제품을 팔 수 있다. 디지털 사업은 특히 플랫폼을 활용해 전 세계 어디서든 즉시 제품을 개발, 제조, 홍보, 배송할 수 있다.

디지털화로 전환되는 사업이 늘면서 기업들은 고객, 제품, 거래, 물류 등 거의 모든 것에 대해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데이터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 더 많은 데이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선순환은 더 가속화되고, 디지털 플랫폼, 디지털 사업, 데이터가 순차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는 속도를 높이면서 변곡점에 이르렀다. 플랫폼은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였다. 개인이 회사를 만들고, 대기업들이 직접 구축하던 모든 것을 임차함으로써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게 되었다.

룩소티카는 20세기에 뛰어난 기업인들이 만들었던 전형적인 기업 중 하나다. 안경 부문에서 룩소티카는 모든 사람에게 다양한 제품을 제공하는 접근법의 대가였다. 규모가 성공을 안기는 시대에는 이런 식으로 대기업이 만들어졌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온라인 안경 유통업체인 와비 파커는 멋진 디자이너 스타일 안경을 엄선해 명품 안경보다 훨씬 저렴하게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것을 핵심 아이디어로 삼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로부터 컴퓨팅 능력을, 소셜네트워크와 검색엔진으로부터 고객에게 다가가는 마케팅 능력을, 외주 업체로부터 제조 능력을, 페덱스와 UPS로부터 배송 능력을 임차한다. 반면, 룩소티카가 대규모 시장에 안경을 팔기 위해 전 세계에 걸쳐 유통망을 구축해야 했다. 이제는 플랫폼 기반의 와비 파커 같은 스타트업이 하룻밤 새 판도를 바꾸는 온라인 매장을 열 수 있다. 이것이 탈규모화 경제의 핵심이다.

스타트업들은 규모를 임차할 수 있다. 이제 탈규모화는 시작에 불과하다.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의 첨단 신기술이 등장하고 플랫폼으로 개발되면, 아직 생기지 않은 스타트업들이 대중시장을 상대하는 대기업들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이러한 스타트업들은 플랫폼을 토대로 틈새시장에 크게 어필하는 제품을 만든 다음 지구상 어디에 있든 열성적인 고객을 찾아 판매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플랫폼 기반 탈규모화의 힘이 20세기 경제를 분해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재조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구자록 울산정보산업진흥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