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철학산책(32)]스트리트 포토그래피 단상

2021-09-06     경상일보

2020년 일본의 카메라 회사인 후지필름이 선정한 x-포토그래퍼 중 한 명인 타츠오 스즈키는 새로 출시한 카메라 홍보를 위해 영상을 찍었다. 그러나 후지필름 측은 그 영상을 공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삭제했다. 영상 속 사진가의 비윤리적인 촬영방식에 대한 비난 때문이었다. 그는 행인의 얼굴이나 모습을 동의 없이 찍어 그 영상에서 공개했던 것이다.

길거리 사진(Street Photography)은 사진의 여러 장르 중 하나다. 흔히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이 35㎜ 필름규격의 라이카 카메라로 거리를 찍으며 본격화했다고 알려졌다. 브레송 이후 많은 사진가들에 의해 그냥 잊혔을 길거리의 모습과 삶의 이야기가 감동과 아름다움이 가득한 예술작품으로 전해지게 됐다.

이렇듯 사진가들은 당대의 사회상이 잘 드러나는 길거리를 나름의 작가적 사명을 가지고 남기고자 노력했지만, 늘 ‘초상권 침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특히 ‘몰카 범죄’가 기승인 한국의 경우 ‘길거리 사진=몰카’라는 인식까지 퍼지고 있다. 많은 사진가들은 초상권 침해에 대한 법률에 따르려 노력하고 있지만, 약속되지 않은 순간적인 움직임이나 현상을 포착해내는 길거리 사진의 생명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필자는 이 문제가 단지 ‘찍는 사람’의 윤리 문제로 환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술에 대한 이해와 향유의 가능성, 예술에 대한 체험의 성공 여부는 결국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즉, 길거리 사진가가 피사체에 대한 예의와 존경을 갖추고 사진을 찍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꼭 그만큼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길거리 사진의 예술성과 그 가치를 이해하는지, 그 결과물을 향유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이 양측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한 사회 내에서 길거리 사진은 ‘향유 가능한 예술 장르’로 살아남기 힘들다.

그러나 이는 결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공교육은 사진이란 시각예술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목숨 걸고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기아와 자연재해의 피해를 알리며, 평범한 일상에 깃든 아름다움을 전한 사진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 아름다움과 비범함을 미래 세대와 공유하고자 얼마나 노력했는가?

만일 매그넘 소속 사진작가인 데이빗 앨런 하비(D.A. Harvey)가 우연히 내 모습을 동의 없이 찍고, 까다로운 그의 기준에 의해 전시장이나 사진집에 나온다면,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술의 창조와 향유는 우리 모두의 몫이며, 협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예술 창작의 과정에 참여하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길거리 사진이 주는 감동을 향유하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정신적으로 더 풍요로운 사회가 아닐까? 사진작가의 윤리성 문제만큼이나 우리는 이 물음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