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자료 정리단계서 벗어나 관련 연구 활성화 방안 서둘러야
한국의 유적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암각화가 새겨진 곳은 반구대암각화 바위와 천전리 각석이다. 국보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두 유적 바위 앞에 사람들이 와 선 때는 신석기시대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두 바위 유적의 암각화 제작자들이 실제 신석기시대 사람인지는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이 유적의 주인공들이 살았다고 여길 만한 신석기시대 유적이 주변에서 거의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구대암각화는 선사시대에 육지와 해양을 무대로 한 사냥, 채집 활동이 차례로 이루어지는 과정이 담긴 드물고 귀중한 유적으로 이와 동일한 유형의 유적이 국내외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유형의 암각화와 명문이 새겨진 특이한 유적이다. 반구대암각화처럼 천전리 각석도 같은 유형의 유적을 국내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하나의 암각화유적에는 한 유형의 암각화만 새겨지는 게 일반적임을 고려하면 울산의 두 국보 암각화는 세계의 암각화유적 가운데에서도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암각화를 비롯한 한국 선사미술 연구는 연구자 풀(Pool)이 좁다고 한다. 연구 포스트(Post)도 몇 개로 제한돼 있다.이런 까닭에 연구 성과가 축적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선 기존의 연구작업에서 한발씩 나아가는 연구의 진척이 더욱 자주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는 물론 이 분야에 관심있는 일반인, 특히 두 기의 암각화를 곁에 둔 울산시민들에게라도 좀 더 쉽게 관련 연구를 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누구라도 원하는 연구자료와 관련 이미지, 영상물을 쉽게 구하여 활용하도록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자라는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어린 시절부터 이를 쉽게 접하고 오랜 기간 지켜보면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에 대한 그 동안의 연구성과는 발견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하나로 취합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연구실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울산박물관, 대곡발물관, 울산연구원 등 울산지역에서 운영되는 기관별 실적은 그나마 관련 홈페이지를 통해 목록만이라도 알 수는 있다.
2011년 설립된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의 사례만 보더라도 <국보 285호 대곡리반구대암각화 현상확인 보고서>부터 영문본 <세계암각화연구 1~3> <한국의 암각화 1~3>, 학술연구총서 ‘울산천전리암각화’ ‘한국의 검파형 암각화’ ‘한국의 풍요제의 암각화’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 연구’ ‘울산 반구대암각화 제작연대론’ ‘울산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각석 연구’ ‘한국 암각화 디지털 발물관 기초연구’ ‘한국의 암각화 2020’을 발간했다. 같은 기관의 학술대회는 세계유산등재전략과 과제(2014), 울산천전리암각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2014), 대곡천 암각화군 역사문화사 비교연구(2016) 등을 주제로 했다.
하지만 세부내용이나 관련 이미지를 다운로드하려면 시간과 발품을 팔아야 겨우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연구비용과 서적제작비용 등의 한계에 부딪히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이와 더불어 전국 각 지역 대학에서 소장하고 있는 암각화 탁본자료 역시 데이터베이스화 해야 한다. 50년 전 발견 이후 역사문화 전공학도는 물론 문화재 및 박물관들이 앞다퉈 탁본한 결과물만 정리해도 초창기 암각화의 형태와 연도별 암각화의 변화를 알아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한국의 암각화 연구는 이제 자료 정리 단계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한국의 미술과 문화 연구의 출발점은 선사시대이다. 암각화를 비롯한 선사미술의 다양한 장르들에 관심이 쏠리고 연구도 적극적으로 이루어져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이어지는 미술문화의 전통이 온전히 복원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자료참조= <한국의 암각화>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