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문화의 지방 분권
부울경 동남권에서 들고 일어났다. 지난 7월초 중앙 모 일간지에 국가 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의 서울 건립을 반대한다는 대형 광고가 실렸다. 사흘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소장품 기증관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종로구 송현동에 건립한다고 발표한 직후였다. 사단법인 동남권발전협의회 고문단 명의였는데 아는 분들의 성명이 눈에 띄어 이분들의 강한 지역 애정이 느껴졌다.
소장품관의 서울 건립은 문화 분권과 국가 균형 발전에 역행한다는 취지였다. 공청회 한번 없이 결정된 것도 문제라고 하면서 서울 건립이 철회될 때까지 투쟁할 것이라는 강경한 내용이 담겼다. 삼성가의 기증 소식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기증관 유치전을 벌여왔는데 서울 건립 발표에 크게 실망하였을 것이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욕구는 본원적이다. 생활이 윤택해지면 그러한 욕구가 더 강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심지어 범죄로 인해 격리되었다가 출소한 사람들이 사회 적응 과정에서 함께 영화를 보러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호소한다고 하니 문화에 대한 갈망은 원초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문화 예술의 힘은 강하다. 도시 재생이나 지역 발전의 기폭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스페인 빌바오시가 철강업 쇠퇴로 침체되었다가 미술관 건립으로 문화도시로 탈바꿈하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미술관의 소장 작품들이 멋진 건물의 상징성과 어우러져 관광객들을 끌어 들여 쇠락한 도시를 살렸다. 2만점 넘는 세계적 미술품을 전시하게 될 기증관 유치를 지방에서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고 갈구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된다. 필자는 주거지가 종로구이지만 재경울산향우회 부회장이기도 하고 검사 생활 26년중 3분의 1을 부울경에서 보내 동남권에 대한 애정이 깊다. 광고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하여 그 동안 지방 분권이나 지방 살리기 정책은 꾸준히 추진되어 왔다. 국토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명분으로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를 만들어 행정기관을 이전하였고, 지방 성장의 거점을 만들고자 공기업 본사를 대거 지방 이전하였으나 수도권과 세종시가 합쳐지는 듯한 거대 광역권이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있고, 충분한 균형 발전과 지방 성장 및 분권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이 든다.
현재에도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의 수도권 집중은 심해지고 있다. KTX의 개통 등 교통의 발달은 이를 가속화하였다. 수도권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넘어섰다. 수도권 집중으로 지방이 소멸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인 이야기도 있다. 대학이 서열화된지 오래지만 최근 서울 소재 대학과 지방 대학의 격차가 전보다 커졌다. 수도권 집중 해소를 위해서는 정치 경제의 축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보다 오히려 주요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방법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처럼 몇몇 명문대학 분교가 수도권 인근(강원, 충청권)에 소재하는 것만으로는 근본적 대책이 못된다. 아예 서울의 명문대학이나 유명 사립대학 상당수가 충청권을 벗어난 남쪽으로 내려오고 몇개 대학도시가 만들어지면 획기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관건이다.
문화와 교육 등의 지방 분권은 백년대계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다. 기증관이 들어서는 지역은 문화·예술의 자양분이 배가될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에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것이다. 기증관 건립은 전국민이 골고루 문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소장품 기증관의 분관을 동남권에다 건립하고 소장품을 분산하여 서울과 교차하여 상시 전시하는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