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26)]펜실베이니아, 기회와 다양성의 시작
미국은 기회와 다양성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을 ‘샐러드 볼(salad bowl)’ 사회라고 부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다양한 사람이 샐러드볼에 담긴 각종 채소처럼 고유한 특성을 유지한 채 같이 공존”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면서 샐러드볼을 언급했다. 1970년대 캐나다에서 시작된 이 이론은 세계화와 국제교류가 일상이 된 21세기에 가장 차원높고 정당한 논리로 정착됐다. 이전의 ‘멜팅포트(용광로) 이론’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주장한 백인우월주의는 멜팅포트와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최근 미국 대선 결과는 기득권세력인 미국 백인들이 자신이 속한 인종의 눈 앞 이익 보다는 사회구성원 전체의 공존과 통합을 우선시하는 배려와 관용정신을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미국사회는 한단계 더 발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위대한 자산인 ‘기회 균등과 다양성’이 공식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이며, 어디에서일까? 바로 미국 초기 식민지 시대이며, 중부 식민지 특히 펜실베이니아가 그 시원이라고 볼 수 있다.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는 이름에 나타나듯이 ‘펜’이라는 사람의 ‘산림지’이다. 뉴욕주 북부에 자리잡은 ‘펜의 숲’은 영국왕 찰스2세가 자신의 빚을 갚기 위해서 윌리엄 펜에게 준 땅이다.
퀘이커교의 순수와 정직에 끌린 펜은 영국에서 박해받는 퀘이커 교도들의 피난처로 이곳을 개발했다. 이곳은 영국인, 네덜란드인, 독일인 등 국적을 초월하여 개척자들에게 기회를 주었고, 다양한 종파를 모두 받아들였다. 현대 미국사회의 인종과 민족 다양성, 기회균등의 특징은 중부 식민지 펜실베이니아 전통에서 나온다.
펜실베이니아는 종교면에서 퀘이커 주(Quaker State)라는 별명을 갖는다. 퀘이커 교도들을 위하여 세워졌기 때문이다. 해리슨포드 주연 영화 <위트니스>(1985)에 나오는 종파와 비슷한 인상을 우리는 가진다. 이러한 인상이 일면 일리 있지만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 미국 교회사>(김신호)에 따르면 실체는 상당히 다르다. 1) 퀘이커는 사람들이 조롱했던 별명이고 원래 이름은 ‘종교친우회’(Society of Friends)이다. 영국에서 1646년 폭스가 설립했다. 2) 이들은 세례와 성찬 등 전통예배의 형식을 거부하고 사례받는 목사제도를 인정하지 않았다. 성령의 ‘내적 빛(inner light)’의 인도에 따라 예배를 진행했고 평신도도 여성도 흑인도 설교할 수 있었다. 3) 퀘이커교도는 청교도와 달리 완전한 남녀평등을 지향했으며, 교회 건물없이 집회소만 있었다. 21세기 최첨단 민주적 교회개념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당시 정치권력을 움켜쥔 미국 청교도들은 이들을 불온세력으로 몰아, 체포, 불낙인, 혀에 구멍내기, 귀자르기 등을 자행했다.
박해를 받았으면서도 퀘이커 교도들은 기득권을 포기할 줄 아는 ‘조용한 혁명가들’이었다. 펜실베이니아 정부는 퀘이커 교도인 펜이 세웠으나 1750년 새 총독이 임명되면서 인디언들에게 선전포고를 하자 퀘이커 신자들은 자신들이 이룩한 주의 공직에서 모두 물러났다. ‘펜실베이니아 정권포기 사건’이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이후에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돕는 일에 앞장섰다. 폭스는 노예제도 반대운동을 벌였고, 신도들에게 노예를 풀어주라 명했다. 19세기에는 여성인권과 도시빈민 운동, 원주민 인권보호, 평화운동의 공로로 미국-영국 퀘이커 봉사위원회는 1947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전적으로 포기한 채 모든 종파와 인종 수용과 성평등을 일찍부터 수용하고 실천함으로써, 펜실베이니아 주를 다양성과 비폭력의 성지로 만들어 놓았다. 낮은 자세로 사는 퀘이커교의 거울로 우리 사회의 각종 우월주의와 집단주의를 비추어보면, 그 속내는 물욕과 권력욕으로 가득차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