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우의 경제옹알이(9)]청년들이 일하기 좋은 곳은 별로 없다
청년, 특히 젊은 남성은 과거에는 선호되는 노동력이었다. 젊다는 것은 힘이 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힘이 센 젊은 남성은 기술적 숙련도가 높지 않더라도 힘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는 선호됐다. 낮은 기술적 숙련도를 힘으로 보완하면서 일을 하고, 점차적으로 기술적 숙련도를 높여 가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힘을 쓰는 일은 점점 기계가 대신하게 됐다. 아직도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은 존재하지만, 그러한 일자리는 청년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기업에서도 기술적 숙련도가 낮은 청년들을 이제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기업이 계속 교육비용을 지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은 점점 경력자 위주로 채용을 진행한다.
청년 노동력을 선호한 또다른 이유가 있었다. 사실, 중소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그냥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일을 하는 직원상’에 가까웠다. 나이를 중시하는 우리의 문화로 인해 청년들은 그냥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일을 하는 인력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청년들도 그냥 시키는 대로 일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청년들의 의식과 문화가 바뀌었다. 하지만 기업문화는 청년들의 의식변화보다 매우 더디게 변화하고 있다. 이는 분명 사회와 정부가 많은 노력을 들여 개선해야 할 사항이지만 개선은 느리게 진행될 확률이 높다. 청년들은 억울하지만 기업문화의 피해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은 기업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청년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 청년은 많은 경우 숙련도가 낮은 노동력이고, 숙련도가 낮은 노동력이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일을 하는 것을 거부하면, 그다지 큰 필요가 없다. 경력직을 고용하거나, 기계로 대체하는 것이 더 선호되는 이유다. 그러니 청년이 갈 곳은 점점 더 사라지게 된다. 청년이 원하는 수준의 임금을 주며, 숙련도가 낮은 청년 노동력에게 충분한 교육과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이 원하는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청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리고 사회의 잘못이고 개선돼야 하지만, 별로 없다.
가장 긍정적인 해결방법은 청년이 가진 젊음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업무를 하는 것이다. 젊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것과 연관성이 높다. 창의적인 생각을 통해 생산성 향상을 가져온다면 기업에도 분명 도움이 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기업에 기여하는 청년이 기업문화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면, 기업도 기업문화의 변화를 보다 긍정적으로 고려할 것이다.
문제는 젊음이 꼭 창의성에 기반을 둔 생산성의 향상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들은 기술적 숙련도가 낮으며, 현대 기술은 점점 더 복잡해져서 숙련도 없이 창의성을 발휘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물론, 청년들이 창의성을 발휘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분야는 분명 존재하며,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청년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빨리 확대되지는 못하고 있다.
요즘 중소기업들은 이력서를 볼 때 주소를 매우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중소기업이 제시하는 연봉수준은 청년들이 원하는 것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회사와 먼 곳에 살면 출퇴근 시간이 너무 길거나 임대료 부담 때문에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채용한지 얼마 안된 청년이 퇴사하게 되면 중소기업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는, 현재는 답이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답이 나온다. 인구가 빠르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일손이 부족해서 고용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인구가 줄면 고용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지만 아직 완벽하게 대체하지는 못하고, 기계화와 자동화가 높은 수준으로 진행되면, 고도의 기술을 이해하는 인간의 노동생산성이 더 높아진다. 교육과 문화는 미래세대에 맞추어 변화하여 인간이 기계를 통해 더 높은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
당장은 청년들에게서 답을 찾기도 어렵다. 창의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은 이상적이지만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한 대안이며 모두를 수용하지 못한다. 현실적인 대안은 낮은 연봉을 받으며 시키는 대로 군소리 없이 일하는 것이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대안이다. 그리고 그 두 개의 극단 사이에 다른 대안은 별로 없다. 미국의 히피, 일본의 히키코모리(은둔형외톨이)는 비슷한 문제를 우리나라보다 먼저 겪었던 미국과 일본 청년들의 슬픈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청년들이 분발하는 것을 응원한다. 더 이상 젊지 않은 필자는 그래도 청년들이 부럽다. 지금 이 꼰대 같은 글은 사실 부러워서 쓰는 거다. 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젊어질 수는 없다. 실패하고 후회하고, 그리고 한 번 더 도전하기를 부탁한다.
유동우 울산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