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22)]소시민이 비빌 언덕은 없다
개발이라는 말이 온 나라를 덮어 버렸다. 모든 방송이나 신문이 수도권 어떤 지역의 개발에 문제가 있다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개발이 문제가 아니라 개발이 남긴 이윤이 문제다. 한 지역을 개발한 대가로 벌어들인 돈이 누가 보아도 너무 많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 것 같다. 반도체와 전기차, 게임과 같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첨단 기술로 이루어진 미래산업이 우리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마당에 토목건설로 떼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은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다. 이 과정에 무슨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렇지 않고는 토목건설로 떼돈을 버는 일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 전제되어 있다.
반도체나 배터리를 개발하고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벼락부자가 된다한들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그런 일은 배가 아프기 보다는 박수를 쳐야하고 그것을 개발한 사람이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것을 뿌듯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전탈기가 지난 산업이라고 평가하는 토건사업이 대장동뿐만 아니라 온 나라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 재개발이라 불리는 토건사업이 토건업자뿐만 아니라 그 사업에 포함된 지역 주민들에게 평생에 한번 경험하기도 힘든 떼돈을 벌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몇 년 만에 초등학교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도 이런 일은 단연히 큰 화제 거리였다. 누가 묻지도 않았지만 한 친구가 기분 좋은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가 사는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갈 것 같다고. 그래서 이미 아파트 값이 두 배 넘어 뛰었다고. 친구에게 노후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 같다고, 그래서 부럽다고 거들어 주었지만 그리 진심어린 축하는 되지 못했다. 친구가 나이 들어 기대하지 않은 복을 받았으니 당연히 같이 기뻐해야 할 일이나 재개발 사업에서 얻은 행운이 적정하거나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개발로 얻게 된 불로소득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대놓고 자랑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은 매우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돈이 생기는 일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일은 이미 드물어졌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금은 대장동 사업을 모두 욕하지만 똑같은 사업이 내 주위에서 일어난다면 마음속으로 만세를 부를지언정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내가 사는 아파트도 언젠가는 재개발에 포함되는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지도 모른다.
하나 둘씩 드러나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검은 거래들을 보면서 우리의 욕망은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비대해지고 촘촘해져서 아무도 그 덫으로부터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무서움이 들기도 한다. 한 나라의 법적 가치를 지켜내는 마지막 보루인 대법관의 양심이나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의 본분조차도 그들의 욕망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대부분의 소시민들은 어디에서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윤리적 근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의문스럽다. 더 배우고 더 가진 자들의 기가 막히는 일탈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리는 개인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물론이고 사회적인 일을 도모하는 과정에서도 적정한 방법이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욕망을 채우는 방법에도 사회적 양심이 허용하는 선이 있다는 믿음이다. 특히 별로 가진 것이 없이 살아가는 소시민들은 이러한 사회적인 윤리에 대한 믿음이 약해지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일이 힘들어진다. 매일 겪는 어려움일지라도 경제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가 부여하는 윤리적인 의미가 동반되어야 좌절하지 않고 견뎌내기가 수월하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나는 개발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에 관한 소식은 그러한 횡재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우리 같은 소시민들의 별 볼일 없는 일상을 한없이 작아지게 하고 힘들게 한다.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