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만의 사회와 문화(27)]세계의 수도로 발전한 뉴욕

2021-10-13     경상일보

세계는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일수록 우리는 세계 최강 미국을 제대로 알고 한국을 살펴야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은 안보상 우리의 최대 우방국일 뿐만 아니라 경제파트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미국의 역사와 뿌리를 잘 알지 못한다. 미국 역사 초기, 동쪽 대서양 연안에 13개 식민지가 형성됐다. 각 주는 그 나름 독특한 연유와 역사를 가지고 생겨났다.

북부식민지의 경우, 매사추세츠는 청교도들의 종교의 자유를 위해, 펜실베니아는 퀘이커교도들을 위하여, 메릴랜드는 가톨릭교도들의 피난처로, 로드 아일랜드는 청교도만이 아닌 모든 종교인을 위한 자유의 장소로 성립된 곳이다. 오늘 다룰 뉴욕은 ‘세계의 수도’로 불리는 곳으로, 세계 안보의 각축장인 유엔본부가 위치하며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이자, 문화적 포용성으로 예술을 꽃 피운 중부식민지다.

17세기에 뉴욕 식민지는 밀을 생산, 수출하는 농업지역이면서 상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이곳은 네덜란드인들이 1626년 정착한 북미 전진기지인데 나중에 영국이 탈취했다. 그 후 도시이름이 뉴암스테르담에서 뉴욕으로 바뀌게 된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뉴욕의 산업적, 문화적 특성은 그대로 유지된다. 북부의 종교색채가 강한 식민지들과는 많이 다르게, 종교적 한계를 극복하고 상업적인 투자와 이윤에 집중했다. 뉴욕을 처음 개척한 네덜란드인들의 상인기질이 이미 토대가 되어 있었다. 유럽의 여러 민족이 미국땅으로 유입되었지만, 뉴욕이 현재 세계의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가 된 것은 세계 유랑민족 유대인까지도 따뜻하게 포용해준 문화 개방성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유대인들은 오래전부터 유럽에서 금융을 장악한 큰손이었다. 긴 역사흐름 속에서 보면, 유럽에서 종교 핑계로든 인종 구실로든 추방당한 유대인들을 포용한 통큰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보상이기도 하다. 미국이 있기에 유대인 금융파워가 존재하지만, 유대인 금융이 미국에 들어왔기에 미국이 세계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난 미국 대선결과를 보면, 기득권 인종인 백인 중심주의를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능력은 낮으면서 기득권을 누리려는 저학력 백인 남성들의 반발에도 미국은 다양성과 능력주의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유불문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남성우월주의, 지역우월주의를 넘어서 편협한 민족주의나 교조적 종교의 시각을 넘어서서 타자를 인정하는 문화적 개방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더욱 발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뉴욕의 유대인 포용은 미국 경제발전의 신의 한 수가 되었다. 독립이 선언된 1776년경 뉴욕은 유대인의 최대 거주지가 되었고 이들은 모피 교역상, 농장주, 노예상, 해운업자로 번성했다. 독립전쟁이 벌어지자 유대인들은 혁명군에 복무해 승리에 일조했다. 채권중개상 살로몬은 전비 조달에 크게 기여했다. 유대인 이민자들은 특유의 근면과 성실로 행상을 거쳐 잡화상, 도매상, 의류 제조업자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유대인은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융, 백화점, 의류 등을 주도했다. 한때 최대 도시 뉴욕의 백화점은 모두 유대인이 운영했다. 전통적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시기 질투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돈만 잘 버는 것이 아니라 자선기부를 꾸준히 하면서 사회의 인정을 쌓아갔다. 최근 대표적인 존재가 헤지펀드의 대부 조지 소로스이다. 미국 금융권력의 핵심인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직을, 현재 재닛 옐런에 이르기까지 4명의 유대인이 연속적으로 맡고 있다. 미국 인구의 3%이면서 미국경제와 금융을 쥐락펴락하는 유대인 공동체는 천부적인 금융능력과 긴밀한 네트워크를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도 단일민족이라는 허상을 버리고 편협한 지역주의, 서울공화국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타 지역과 타 민족과 타 종교에 대한 문화적 포용성을 확대해 갈 때 비로소 밝은 미래가 다가올 것이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