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터키에서 부르는 우리나라 만세

2021-10-14     경상일보

터키에 9월부터 와서 살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터키 도시 카이세리에 있는 국립에르지예스대학교 인문대 한국학과에서 2021년 9월부터 일하기 시작하였다. 이 대학은 나와 인연이 깊다. 2000년도에 한국학과를 설립해달라고 하여 3년동안 열심히 학과를 만들고 귀국한 뒤 20년만에 돌아온 나의 제 2의 고향같은 도시이다. 카이세리는 그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상전벽해가 되어 있었다.

먼저 씨앗을 뿌려놓은 에르지예스대학교 한국학과는 터키에서 한국학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이는 터키인과 한국인 교수가 합심해 20년간 학과를 일군 덕분이지만 한편으로 한류와 우리 국력에 힘입은 바 크다.

터키에는 현재 세 곳의 한국학 관련 학과가 있다. 수도 앙카라에 앙카라대 한국어문학과가 있고 이스탄불에도 이스탄불대학교 한국학과가 있다. 그러나 압도적으로 에르지예스대학교가 세 대학을 능가하고 있다. 10년 먼저 세워진 앙카라대 한국어문학과보다 학생 수가 2배이상 많고 학사부터 박사까지 고루 분포되어 있다. 한 학과에 약 400명가량의 학생이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도 드문 경우이다.

그리고 터키에서 한국어 강좌가 열리는 대학은 10군데 정도 된다고 한다.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여러 사업을 하고 있어서 한국에 대한 수요와 인기는 날로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도 아니고 최대 도시도 아닌 인구 100만의 카이세리는 어떤 도시인가. 한 마디로 역사가 첩첩이 쌓인 고도요, 실크로드로 가는 길목의 도시였다. 카이세리는 로마제국 시대 티베리우스 황제(기원후14년~37년)가 황제의 거리 ‘카이사레아’라고 한 데서 도시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박물관에 가면 로마 시대 부조가, 아름다운 대리석 관이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 있다. 셀축터키와 오스만 터키, 또 실크로드 종착지인 이스탄불 전의 대상 도시로도 유명하다. 대학에서 7㎞만 가면 4000년전 힛타이트 시대 대상들의 유적인 ‘큘테페’라는 멋진 고대의 자취가 그대로 남아있고 ‘카파도키아’라는 터키 유명 관광지도 있다. 한편 해발 4000m에 가까운 백두산과 설악산을 연상케 하는 웅장한 에르지예스 만년 설산이 있는데 대학도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

서울에서 살다가 이 역사 깊고 유구한 도시로 이주한 나는 대체로 행복하다. 하루 다섯번씩 이슬람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잔’ 소리로 잠을 깨면 하루가 길다. 터키인은 99%가 이슬람이다. 이슬람하면 우리는 극단적인 탈레반이나 IS 테러집단만 생각하기 쉽지만 하루에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낮은 자세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대체로 선량하다. 게다가 ‘자카트’라는 희사(喜捨)의 교리가 있다. 상공업에 종사하는 부자들이나 농민들이 일정액수의 돈이나 생산물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국립대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이 대학에는 개인이 희사한 건물들이 무척 많다. 그것은 대학 건물마다 기증자 이름이 함께 쓰여져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익숙한 나는 아직 인터넷이 불안정한 이 곳에서 미리 강의를 녹화해 놓아야 마음이 놓인다. 요즘처럼 비대면 방식과 대면 방식이 병행하는 코로나 시대의 한국이 아닌 나라의 풍속도이다. 심지어 ‘빨리빨리’ 문화라는 말은 내 사전에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의 컴퓨터 작동 속도나 행정 속도를 보면 내가 얼마나 초스피드의 나라에서 살다 왔는지 가늠하게 된다. 느려서 물론 좋은 점이 있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웬만하면 스스로 해결 능력이 생기거나 빠르게 접는 능력이 생긴다. 한국에서 소포를 수십만 원어치 부치면 여기서는 받을 때도 꽤 큰 액수를 또 내야 한다. 이렇게 문화가 다른 것이다. 아니 왜 돈을 또 내야 하냐고 따지면 안 된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새로운 별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왜 전생에 이랬는데 이 생에 다르냐고 항의하는 것과 같다. 그러니 대한민국에 살고 계신 여러분들은 밤마다 만세 삼창을 하실 일이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만세!’

정진원 터키 국립 에르지예스(ERCIYES)대학교 한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