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암각화, 연구자료에서 벗어나 한국 대표 문화예술콘텐츠로 진화를

2021-10-18     홍영진 기자
반구대암각화는 1971년 12월25일 발견됐다. 사실 이 말은 어폐가 있다. 지역 주민들은 이상한 그림이 새겨진 바위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바위 그림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동국대학교 불교유적조사단에 의해서였다. 그러니 ‘발견’이라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반구대암각화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세계 선사미술학계는 동아시아의 한국에 귀중하고 의미 있는 선사 미술작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널찍한 바위 한 면을 가득 메운 사슴과 고래, 맹수와 사람. 유럽 외의 지역에서 반구대암각화처럼 큰 화면에 바다와 육지의 다양한 생명체가 무리 지어 묘사된 작품이 발견되기는 처음이었다. 고래와 사슴이 한 화면에 새겨진 암각화가 발견되기도 처음이었다.

청동기시대 초기나 신석기시대 후기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대화면 미술작품에 세계 선사미술학자들은 경이의 눈길을 보내며 이와 관련된 더 상세한 정보를 접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반구대암각화 실측보고서는 발견된 지 13년이 흐른 1984년에 나왔고, 국내 학자들의 연구는 한동안 여기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했다.

반구대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은 국내에 암각화학이 연구 분야의 하나로 자리 잡고, 선사미술 연구가 본격화될 수 있게 할 유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이후 암각화 연구의 문은 열렸지만, 유적의 발견과 보고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했고, 선사미술 연구는 독립된 분야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일이 년에 한두 편 연구논문이 나오는 정도에 그쳤다. 이런 분야에서 성과를 쌓아가는 연구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어떤 한 분야가 자리 잡으려면 사회적 차원의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문학을 교양적 지식 정도로 여기고, 문화와 예술을 주요 행사를 빛내는 장식품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선사미술 연구나 암각화학 같은 기초학문이 한 분야로 자리 잡을 공간은 없다.

선사미술 작품이나 이와 관련된 지식을 무한한 개발 가능성을 담은 문화유산 콘텐츠로 여기기보다는 디자인용 참고자료 정도로 평가한다.

선사미술이나 암각화 연구가 설 자리가 없다면 국내에서 국보로 지정된 반구대암각화나 천전리 각석에 눈길을 줄 연구자가 더 늘어나기를 기대하는 건 무리다. 반구대암각화와 같이 유례없는 대형 선사미술 작품이라도 해외의 관심 있는 연구자의 연구 자료로 남을 수밖에 없다.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는 여러 가지 다양한 행사로 빛내야 하겠지만, 몇 안 되는 선사미술 및 암각화 연구자들이 연구의 의미와 가치를 되뇌며 보다 심화된 연구를 위한 의지를 다지는 계기도 제공해야 한다. 2021년은 반구대암각화를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눈길을 주고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원년이 되어야 한다.

반구대암각화 발견 50주년 행사가 문화 울산, 에코 울산이라는 새 시대의 표어에 걸맞게 준비되어 시민 모두의 축제가 되기를 기대한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울산대 반구대암각화 유적 보존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