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부울경 메가시티, 탁상공론에서 현실로
한 의원의 독설에 회사를 다른 주로 옮긴 기업의 대표가 있다. 아주 큰 기업이라서 떠난 자리에 충격이 클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그 사람들을 돕던 다른 공급자들이 힘들게 된다. 떠나봐야 “있을 때 잘 해!”를 안다. 근년에 기업들이 실리콘 밸리에서 줄줄이 떠나고 있다. 수백이 벤처로 출발해서 겨우 살아남은 몇몇 기업이 수천, 수만을 먹여 살린다. 그런데 그런 기업인들을 적대시하고 과하게 세금을 매긴다. 이미 땅값, 집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줄줄이 붙는 세금과 공과금에다 벌리는 손은 외면하기 어렵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다.
오래전 영화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가 생각난다. 술이나 먹고 흥청거리는 도시가 아니라 이제, 제대로 휴양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보고 쉬고 배울게 많은 곳이다. 라스베이거스 아래에는 모하비 사막이, 왼쪽에는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그랜드 캐니언이 있다. 유타주의 땅이기는 하지만 2시 방향으로 올라가면 ‘베어 이어즈, 그랜드 에스칼란테’ 국가유적지가 있다. 지도를 보면 곰의 귀를 닮았다 해서 곰귀(bear ears)라 부르는 곳인데 수십만 점의 원시 유물, 유적이 있는 곳이다. 마치 반구대의 암각화 같은 것이 사방 수십㎞에 널려있는 보고(寶庫)다.
라스베이거스에서 15번 고속도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유타주에 닿는다. 그곳에 많은 국립공원이 있고 거기서 서너 시간을 더 올라가면 와사치 프런트(wasatch front)라는 곳에 메가시티가 나온다. Provo-Lehi-Salt lake city-Ogden을 잇는 대도시로 ‘실리콘 슬로프’라는 곳이다. 넓게는 남단의 St. George에서 북쪽 끝의 Logan에까지 이른다. ‘실리콘 밸리’의 밸리 대신에 슬로프라는 말을 쓴 것은 그 지역에 산기슭의 언덕배기가 많기 때문이다. 바로 이웃에 있는 파크 시티는 매년 1월말에 선댄스 영화제가 열리는 곳이다. 고급인력이 풍부하고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라는 든든한 바탕위에 기술과, 문화와 경제가 뿌리 내린 곳이다. 6500개 이상의 스타트업과 기술 회사가 있는 이곳엔 설립한지 10년 내에 기업가치 1조원을 달성한, 유니콘 기업들이 비온 뒤 죽순 나듯 하는 곳이다.
10월13일부터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열린 ‘실리콘 슬로프 2021’회의에서 애플의 팀 쿡 회장은 기조연설을 했다.
“우리는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매일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기 위해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를 설계하면서 혁신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헐!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애플은 우리의 삶과 생활을 바꿔 놓고 있다. 아니, 이끌고 있다.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 와치 등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이게 혁신이다.
실리콘 슬로프의 성공요인은 충분한 휴식과 건강한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자연환경과 유능한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많은 것 외에도 독특한 몰몬교의 가족중심, 인간 중심, 이웃사랑 문화가 한 몫을 한다는 점이다. 보수적인 교육체계도 자녀교육에 도움이 된다. 고교를 졸업하고서나 대학 초년에 떠나는 선교활동으로 젊을 때 사서 한 고생, 외국어와 외국의 문화에 익숙하고 너른 세상을 보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말만 번지르르 한 게 아니길 빈다. 부울경 메가시티 말이다. 바로 내년 상반기에 ‘부울경 특별지자체’를 출범할 계획이란다.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이 밀집해 있어 행정과 교육 시스템이 통합 효과를 내면 도시 경쟁력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단다.
기존 지자체를 유지한 상태에서 특별지자체 형태로 경제·관광·교통 등 공통 현안을 처리하게 되는 것이라는데 집안싸움만 하다말까 걱정이다. 인구 800만명의 부울경을 무슨 수로 녹여 하나로 붙일 건가? 그런데 그 800만명은 이를 알고 원했을까? 하필 대선을 앞두고 나와서 탁상공론이 아니길 바란다. 실리콘 슬로프는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다. 20~30년을 사회지도층이 한목소리를 낸 결과다. 문제는 일자리다. 자영업자와 기업을 자라게 하라.
조기조 경남대 명예교수·경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