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수사학과 설득의 방법

2021-10-21     경상일보

현재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치러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한 명을 대선 후보로 선출했고, 국민의힘의 각 후보들은 준비한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고 서로 상대방의 자질을 검증하면서 대선 후보가 되기 위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는 ‘시끄러운’ 사회다.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들은 같은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뿐만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대립과 갈등이 상존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대화와 토론을 요구한다. 이제 토론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토론은 어떤 사안에 대해 자신의 주장이 정당함을, 타인의 주장이 부당함을 합리적으로 제시하는 경쟁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며, 그 목적은 설득(persuasion)에 있다. 그러면 설득의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rhetoric>에서 제시한 설득의 방법을 살펴보는 일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다.

본래 ‘수사학(rhetorike)’은 기원전 5세기 초 시라쿠사에서 탄생했다. 시라쿠사의 독재정권이 민주주의에 의해 무너지자 토지소유권이 모호해졌고, 이제 토지소유권을 둘러싼 소송들이 폭주했다. 소송 당사자들은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능란한 화술이 필요했다. 바로 이때 ‘연설의 기술’, 즉 수사학이 생겨났던 것이다. 최초의 연설 교사로 지목되는 코락스(Korax)는 능숙한 연설의 기술이야말로 청중을 사로잡는 비결이라고 믿었다.

그 후, ‘소피스트’의 수사학은 정의(justice)와 사실(fact)에 기초한 참된 연설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논쟁에서의 승리를 위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야비한 기교만을 가르쳤다. 고르기아스(Gorgias)는 수사학으로 무장한다면 ‘거짓과 부정의’라도 ‘진리와 정의’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수사학은 왜곡되어 타락해갔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소피스트의 수사학을 ‘거짓과 부정의를 포장하는 언어의 화장술’ ‘감미로운 언어의 요리술’로 규정하고, ‘달콤한 속임수’로 악용되는 이러한 수사학을 쓸모없는 것으로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소피스트의 수사학이 지닌 문제점을 알았지만 기본적으로 수사학을 옹호하고 이론적으로 체계화했다. 이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의 고전 수사학 전통의 출발점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라는 세 가지 설득의 방법들을 제시했고, 이러한 설득의 방법들이 어떻게 적절히 사용되는지에 설득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보았다.

에토스는 연설가가 청중에게 자신을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나타내는 방법이다. 연설가 자신이 ‘덕’과 ‘호의’와 ‘실천적인 지혜’를 지니도록 노력하면서 동시에 이런 사람으로 보이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청중은 신뢰할 수 있는 연설가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파토스는 청중의 정서를 자극해 일정한 감정 상태에 이르게 함으로써 주장을 받아들이게끔 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사법 영역의 경우 화자가 청중인 배심원을 어떤 감정 상태에 놓이게 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 연설가가 자신이 설득해야 할 청중의 정서를 파악하고 그 청중을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 상태로 이끌어가는 것은 설득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끝으로, 로고스는 근거에 기초해 주장을 합리적으로 전달함으로써 청중을 설득하는 방법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긍정이나 부정의 주장은 연설가 저마다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타당하다. 하지만 근거 없는 주장은 그저 독단일 뿐이다. 객관적 근거 자료를 제시하거나 논리에 근거해 합리적 추론을 하면서 주장을 펼칠 때 그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꿀보다 더 달콤한 말을 하는 연설가의 화려한 언변술에 잠시 속아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에토스나 파토스만 가득하고 로고스가 결여되어 있다면 설득의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진영(陣營)’에 갇히지 않은 일반 청중들이 어떤 정치가를 정의와 공익 그리고 화해를 위한 정치가로 받아들이고 그의 주장에 설득된다면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결국 그의 로고스 때문일 것이다. 연설가를 신뢰하게 만드는 에토스나 청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파토스도 필요하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로고스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설득의 방법이다.

이상엽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