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의 여행과 건축, 그리고 문화(62)]술탄의 정원, 톱카프(Topkapi) 궁전

2021-10-22     정명숙 기자

터키의 맨얼굴을 보려면 커피향이 진한 바자르(시장)로 가야 한다. 그곳은 세상의 온갖 인종이 뒤섞이고, 온갖 물건이 몰려들어, 온갖 돈과 언어가 교환되는 곳이다. 가히 실크로드의 기착지라 할 수 있다. 오래된 가게를 잘 뒤지면 ‘마술램프’나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찾아 낼 것 같은 동화적 호기심에 빠지게 마련이다. 한 시간만 거닐어도 ‘니 하오’에서부터 ‘곤니찌와’, 그리고 ‘안녕하세요’를 지치도록 들을 만큼 과도한 관심과 형제애를 느끼게 된다.

인구의 다수가 무슬림이지만 부르카를 강요할 정도의 종교적 엄격함도 없다. 워낙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고 있으니 외국인으로서 낯설지도 않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굳이 티를 내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터키인 속에 스며들 수 있을 만큼 다채롭고, 친숙하다. 그렇다고 그들만의 독특함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동서양의 모든 문명이 공존하면서 잘 융합된 무지개와 같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 터키인들은 어떻게 이 같은 도시와 문명을 만들 수 있었을까?

터키인들의 조상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호령하던 유목민족 돌궐이다. 실크로드를 차지하고 동서양 교역을 중개하며 대제국을 형성했던 민족이다. 그들은 내분으로 패망하면서 서쪽으로 무려 8000㎞를 이동하여 중동지역에 다다르게 된다. 유랑민족으로서 온갖 풍상을 겪었던 경험이 밑천이 되었을까. 다른 민족과 쉽게 어울리고, 남의 것을 받아들이는데 거리낌이 없는 문화적 기질이 축적되었음에 분명하다.

그들은 정복지에서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대립을 조율하고 융합하는 일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했다. 약탈과 파괴와 살육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정복지의 종교와 관습과 문화를 인정하고, 자치를 허용했다. 이 탁월한 능력을 바탕으로 11세기에는 중동의 거의 전 지역을 석권하는 셀주크 투르크 제국을 세웠고, 13세기에 출현한 오스만 투르크는 무려 600여 년 동안 동로마제국의 영토를 다스리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다.

오스만 건축의 혼혈성은 톱카프 궁전에서 잘 나타난다.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얼마 후 그들은 바다와 해협으로 둘러싸인 작은 언덕 위에 새로운 황궁을 세웠다. 호수 같은 마르마라 바다, 강 줄기 같은 보스포러스 해협과 골든 혼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되는 아름다운 언덕이었다. 경치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해로를 따라 지중해와 흑해로 연결되는 교통의 길목이었고, 도시를 방어하기에도 안성맞춤인 전략적 요충지였다. 대포만 설치하면 바다로부터 접근하는 적을 쉽게 방어할 수 있는 천혜의 요새, 궁의 이름은 톱카프(Topkapi) 사라이(Sarayi 궁전)라고 명명되었다. ‘톱’은 대포, ‘카프’는 문이니 성문 옆에 두 대의 대포를 설치한 궁이라는 뜻이다. 이 궁전은 19세기까지 약 380년간 오스만 제국의 황궁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유럽이나 중국제국에서와 같은 어마어마한 황궁을 기대했다면 대단히 실망할지도 모른다. 초기 유럽의 여행자들은 이 궁전을 보고 “…고르지 못하고, 비대칭적이고, 중심축이 없으며, 기념비적이지 않은 균형”이라고 혹평을 남겼다. 유럽의 궁전건축과 어떤 차이를 갖는지 잘 표현해주는 감상평이다. 절대군주 시대의 유럽왕궁들이 축을 중시하고 좌우대칭에 기념비적인 파사드를 자랑하는 점에 비하면, 이 황궁은 전혀 정연하지도 않고 권위적이지도 않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대제국의 위상에 걸맞은 압도적이고, 근엄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담하고 화려한 어쩌면 여성 취향적인 건축들이 보석처럼 산만하게 박혀있는 비정형적 구성이다. 이 궁전은 아시아권 궁궐배치에서 흔히 나타나는 레이어와 점층적 심도를 가지고 있다. 대지를 여러 개의 영역으로 나누고, 각 영역으로 진입하는 문을 두어 출입을 통제하고, 각 영역의 분위기가 안으로 들어갈수록 화려하고 정교해지는 다중적 겹으로 구성했다. 다만 반복이나 대칭, 기하학적 정연성이 없고, 구역마다 독특한 배치를 갖는다.

황궁은 모두 4개의 구역으로 구성된다. 각 구역은 중문과 큰 마당을 둘러싸는 건물들로 구분된다. 마당(중정)을 구역의 중심으로 보고 제 1중정, 제 2중정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정을 중심으로 건물을 구성하는 이슬람건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회랑으로 둘러싸는 중정식 영역구성은 아시아권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동서양의 건축양식을 융해하며 재구성한 오스만 양식이라 할 것이다.

첫 번째 구역은 황제와 황궁을 호위하는 근위대가 상주하는 구역이며, 두 번째 구역은 국정을 논의하는 국무회의실을 중정 한 변에 치우쳐 배치했다. 본격적인 황제의 공간은 제 3구역에 집중되어 있다. 여기에 황궁의 본전에 해당하는 접견실(audience hall)이 있지만 특별히 거창하거나 근엄하지 않다. 서양식 왕궁에 비하면 작은 정자만큼 소박한 편이다.

하지만 내부는 눈부시게 사치스럽다. 외형보다는 내부 장식을 중시하는 이슬람 건축의 특징이다. 기하학적 문양의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한 벽, 형형색색의 꽃문양으로 수를 놓은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그리고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하게 장식된 돔 천장, 바로 술탄의 공간임을 말해준다.

제 4구역은 후원에 해당한다. 정자와 정원, 테라스 등 황제와 황실가족의 사생활을 위한 시설들을 볼 수 있다. 바다를 향한 조망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형식의 테라스가 설치되었다. 유려한 기둥과 아치를 통해 보스포러스 해협의 잔잔한 바다풍경이 펼쳐진다. 오스만 황제들은 위압과 군림이 아닌 포용의 아름다움을 추구했음이 분명하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명예교수·건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