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기다리는 마음
가로등 불빛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자신을 확연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달맞이꽃을 보면 세윤(가명)이 생각이 난다. 세윤이는 다문화 아이다. 병설 유치원 입학을 권했으나 굳이 사립 유치원에 넣겠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온 선배 언니의 조언에 의하면 우리 유치원에 보내야 초등 준비가 확실하다는 말에 믿음이 컸다.
세윤이는 우리말이 서툴러 거의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아이다. 일 년에 한 번씩 삼 개월간 베트남 외가에 가면 우리말을 잊고 우리나라에 오면 베트남 말을 잊는 생활이 반복되었다. 여섯 살 후반부터 눈 깜빡거림의 틱 현상이 나타났다. 세윤이에게 약간의 스트레스가 있나 보다 하고 짐작은 했지만, 이유를 자세히 물어보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현상이 더불어 나타났다. 일곱 살이 되자 몸을 부르르 떠는 것을 넘어 1분에 3~4회씩 깜짝깜짝 놀라는 행동으로 반 친구들까지 힘들게 했다. 보호자에게 면담 요청을 했더니 엄마가 가출했단다.
어느 날, 엄마는 아들을 만나러 만삭의 몸으로 나타났다. 베트남 남자와 딴 살림을 차리고 그 남자의 아기를 가졌다는 것이다. 결혼으로 한국 국적을 받은 후에 가출하여 베트남 남자와 알콩달콩 살고 있다.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세윤이 엄마의 외도에 할머니의 분노는 불같이 타올랐고, 분노의 화살은 세윤이가 통째로 맞고 있었다. 세윤이는 점점 불안이 깊어져 말수가 줄어 친구들과의 놀이에도 끼지 못하고 사회성이 많이 떨어졌다. 유치원 생활에 안정감을 높이기 위해 반 친구들이 세윤이의 좋은 점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칭찬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틱 현상은 점점 더 심해졌다. 다행히 유치원에 심리치료를 전공한 미술치료 박사가 있어 선생님께 특별 도움을 요청했다. 방과 후 시간을 이용해 주 2회씩 3개월간 심리치료와 미술치료 수업이 진행되었다. 아버지는 상담수업에 대한 기대를 전혀 하지 않는 듯했다.
세윤이는 그림 검사에서 힘센 사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힘을 갈구하는 마음이 강했다. 미술치료에서는 자신을 아주 작게 표현하고 가장자리에 자기 모습을 그리는 것을 보면 자존감이 낮고 소심하며 불안을 비롯한 열등감이 있다. 대화를 나눌 때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눈 마주침을 어색해했다. 촉감에 의한 이완과 즐거움을 끌어내 미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면서 상호작용 시간을 늘려갔다. 여러 가지 매체에 의한 비정형화된 미술치료 방법으로 인정과 지지를 많이 해줌으로서 자신감과 집중력이 상승하고 상호작용도 차츰 원활하게 되었다. 갑자기 잃어버린 엄마의 관심과 사랑을 교사에게서 받으니 정신적 불안이 어느 정도 제거된 듯 보였다. 회기가 첨가될수록 흥미가 높아졌고 말 수도 조금씩 늘어났다. 4 회기부터는 깜짝깜짝 놀라는 틱 활동이 1분에 1~2회로 줄고 증상이 많이 완화되었다. 여러 회기를 거치면서 이제 칭찬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질문도 부드럽게 했다. 궁금한 것은 스스럼없이 질문하였고 상담 시간이 가장 재미있다고 했다. 상담 초에 목표로 세웠던 불안감 낮추기, 사회성 높이기는 어느 정도 도달한 것 같았다. 10회기 상담에서 틱이 어느새 깨끗이 사라짐을 알 수 있었다. 세윤이의 변화에 코끝이 시큰하고 가슴이 뛰었다. 본인 그림은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이동했으며 그림의 크기도 조금씩 커지고 있다. 아버지는 기대 이상의 긍정적인 상담 효과에 대해 믿을 수 없는 결과라며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선생님, 세윤이가 달라졌어요. 이제 깜짝깜짝 놀라지 않아요.”
세윤이 짝이 정상으로 돌아온 세윤이를 큰소리로 이상하다고 표현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말이 실감 났다. 미술치료와 심리 치료를 맡아 애써주신 선생님이 참 고마웠다.
시골 어느 마을에 베트남 새댁 19명 중의 18명이 가출해서 그들이 낳은 손자를 조부모가 키우려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저출산 시대라고 하나 다문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들이 낳고 심리적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사회적 문제가 되기 전에 교사와 사회, 우리 모두가 정성껏 돌봐야 가정이 살고 나라가 산다.
박현숙 수필가·예원유치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