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53)]진도 금골산 오층석탑

2021-10-29     경상일보

명량대첩지 울돌목 위에 놓인 진도대교를 지난다. 이순신이 13척의 배로 133척 왜선을 무찌른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의 대세를 바꾸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하다’ 칼의 노래에서는 이순신의 고독을 이렇게 표현한다. 뭉클함을 안고 진도대교를 건너면 군내면이다.

군내면에는 보물 제529호로 지정된 금골산 오층석탑이 있다. 금골산은 해발 193m로 산 전체가 거대한 바위로 우뚝 솟은 기묘한 산이다. 누군가 공을 들여 조각해 놓은 예술품 같다. 절벽의 층층 바위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여러 형상의 기암괴석에 색깔마저 각양각색이라 진도의 금강산이라 불린다. 고려 후기에 조성된 금골산 오층석탑은 금성초등학교 마당에 있다. 높이 4.5m로 단층 기단 위에 오층의 탑신을 올렸다. 백제계 석탑을 계승한 것으로 일층 몸돌의 높이가 지나치게 길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고 두껍다. 비례가 맞지 않아 기형으로 보이지만 금골산이 오층석탑을 든든하게 받쳐 주고 있어 기세만은 당당하다.

탑이 있는 곳에선 운동장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가을이 깊어지면 만국기가 펄럭이고 운동회가 열렸다. 아이들이 목이 터져라 부르는 응원가에 금골마을이 우꾼우꾼 열기로 가득했다. 불굴의 의지가 담긴 기마전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오층석탑도 금골산도 놀라서 움찔거렸다. 큰 공을 굴리고 부채춤을 추던, 해맑은 아이들을 바라보던 그때가 석탑에게도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금성초등학교는 지금 전교생이 스무 명을 조금 넘는다. 그래서 시소도 그네도 정적에 싸여 있다. 운동장 가운데 배구공 하나가 덩그렇게 있는데 심심하다고 자꾸 속삭인다.

가을 햇볕 쏟아지는 넓은 운동장에 진도북놀이 한판 벌이면 어떨까. 굿거리와 자진모리, 동살풀이로 넘어가는 화려한 북장단에 ‘덩더꿍’ 금골산이 들썩인다. 이순신 장군처럼 고독했던 오층석탑도 맺고 푸는 신명나는 놀음에 우줄우줄 걸어 나와 어깨춤을 춘다. 그랬으면 좋겠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