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안보와 정치의 퓨전-핵의 정치학

2021-11-01     경상일보

최근 야권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 핵공유’를 놓고 공방하면서 국민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의 대북 및 안보 정책에 불만을 가진 일부 정치인과 지식인의 “핵을 머리에 이고 살 수 없다” “우리도 핵무장을 하자”는 둥 자극적인 말을 들어온 터라 새삼 놀랄 일은 아니다. 다만 독자적 핵무장에서 핵공유로 초점이 바뀌었다는 점이 새로울 뿐이다.

북핵은 단순히 군사적 요소만이 아니라 국내 및 지역의 정치적 전략적 변수들이 뒤얽혀 있는 난제다. 따라서 특별한 정치적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다뤄야지 철 지난 정서적 감각이나 얄팍한 정략적 순발력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주장들에서 앞뒤가 맞지 않거나 속내로 보이는 내용 한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북한이 왜 저토록 궁지에 몰리면서까지 핵전력을 강화코자 하는지? 명확한 설명이 없다. 2006년 첫 핵실험 때도 그랬다. 당시 보수든 진보든 한목소리로 북한의 행동이 “무모하고 비이성적”이라 비난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북한의 의도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을 내놓지는 않았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태도는 유지되고 있다. 특히 보수는 북한이 여전히 “적화통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핵전력을 강화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가 아니라 신념에 가깝다.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1970년대 초 이후 북한은 미국과 한국의 보수 세력에게 ‘위협 아닌 위협(necessary evil)’이었다. 지금 북한의 핵전력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정책적 ‘오류의 결과(boomerang)’다. 지금도 북한은 한국과 일본을 연성 통제하는 미국의 ‘전략적 자산(double containment)’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의 의도를 냉전적 시각으로 파악하는 것은 피상적일 수 있으며 북핵을 인정한다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미다.

둘째,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 핵공유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한반도 비핵화와 비확산 정책 기조를 정면으로 반하는 것인데 왜 그런 주장을 하는지 수긍할만한 설명이 없다. 2006년 보수는 우리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미국의 “핵우산밖에 없다”라고 강변하면서 ‘동맹이냐 자주냐’를 놓고 결단하라고 노무현 정부를 다그쳤다. 그런데 이제 놀랍게도 미국의 핵우산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 핵공유 주장은 예상되는 북한의 핵전력 강화로 미국의 확장억지를 신뢰할 수 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즉각 대응해야 하는데 미국의 손발을 묶고자 북한이 미국 도시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면 미국은 한국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미국의 ‘보장’을 얻어내기 위해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술핵 재배치나 핵공유는 ‘공포의 핵균형’은커녕 억지력조차 담보하기 어렵다. 게다가 그것은 북한의 핵전력을 기정사실화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한미와 국제사회의 노력과 그 법적 정당성을 훼손한다. 미국 정부가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처럼 비현실적이고 무모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혹시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나 의문을 갖는 것은 자연스럽다.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 핵공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덧붙이곤 한다-정부는 중국 눈치보기와 미중 줄타기로 한미일 동맹을 파탄시켰다. 한국과 일본은 북핵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과거사에 집착하지 말자.”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말고, 한미연합훈련을 정상화하고, 미사일방어방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야권 대선 주자들이 의식했든 아니든 진영 차원에서는 대선 국면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유럽식 핵공유 주장을 매개로 전통적인 한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취약해진 진영의 정치적 진지를 복원하고자 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전략과 민족적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 파당적 이익을 앞세우는 듯한 모습이 참 딱해 보인다.

김정배 (사)문화도시울산포럼 이사장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