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23)]케렌시아(Querencia)
자연이 익어가는 가을 모습을 그저 바라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시인의 언어가 만들어 낸 서정에 빠져보는 것도 가을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다. 평소에는 계절에 대한 감상과 거리가 먼 사람일지라도 가을이 되면 서정적인 시구 몇 마디는 읊조리고 싶어한다. 삶이든 계절이든 왕성한 힘의 시간을 지나 조락하고 저물어 간다는 것은 어느 것도 대신할 수 없는 감상적인 정서를 불러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시인 김현승이 쓴 ‘가을의 기도’를 읊조릴 수 있는 행운은 고등학교 국어 교육이 우리의 인생에 미친 가장 깊은 영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좀 더 서정이 깊고, 스산한 가을 풍경에 몸을 적시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에까지 다다른다.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며칠 전 오래 알아 온 노(老)시인의 육성이 담긴 영상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등단 추천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30대 초반에 쓴 시를 80세가 넘어서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담아내는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젊은 시절의 정서를 한 생애를 관통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롭기도 했다. 또 혈기 왕성하던 시절의 감성을 80세가 지나서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담담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웠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젊은 날의 감성이나 정서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쉽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울산에서 음악선생님으로 젊은 시절은 보낸 후 경주를 노후 터전으로 선택했다. 노시인도 자신이 꿈꾸는 노년 생활에 어울리는 곳을 찾았으리라. 아마 변화가 미덕인 시대에 변화보다는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경주가 노시인을 편안하게 했을 것이다. 그도 젊은 시절에는 울산에 대한 깊은 애정을 여러 편의 시로 남겼다. 특히 방어진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시집의 제목도 ‘방어진 시편’으로 정했다. 이제 노시인은 경주 커다란 무덤들 옆을 산책하면서 앞으로 맞이할 죽음의 모습을 자신의 시로 가볍게 다듬고 있는 것 같다. 왕들의 무덤을 보면서 삶은 노루꼬리보다 짧은 여행이라고, 아주 짧은 천국이라고 자신의 시로 읊조린다. 지금은 노시인과 불국사 풍경을 분리해서 기억하는 것은 그를 아는 모두에게 쉽지 않는 일이다.
시인과 같은 감성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도 나이가 들면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는 곳으로 거처를 옮기고 싶어한다. 아주 옮길 형편이 되지 못하면 가끔 찾아갈 수 있는 어설픈 곳이라도 마련한다. 현대 물류의 상징인 컨테이너박스가 참 유용하게 쓰이는 이유다. 그도 저도 아니면 숲이나 물가 어디라도 자신의 기억과 정서가 묻어있는 곳을 자주 찾아간다. 하다못해 동네 카페나 술집이라도 자신이 편안함을 느끼는 곳이 있으면 좋다.
동물에게도 비슷한 정서가 있다고 한다. 스페인어에 케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있다. 투우가 투우사의 칼끝과 일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넓은 투우장 중에서 숨을 고르기에 가장 편안한 장소를 본능적으로 찾아간다고 한다. 그곳이 케렌시아이다. 투우사도 투우가 이곳에 머무르면 더는 공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지금은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짐스러운 일상과 번거로운 인간관계를 벗어나 편안한 공간에 자신을 놓아두고 싶어 한다. 나이 들면 욕구가 더 강해지고 의미도 더욱 깊어진다. 개인적으로도 길 위의 삶을 오래 동안 꿈꾸었다. 다리의 노화 상태에 비추어 더는 미룰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제주도에 작은 케렌시아를 마련했다. 비록 일 년 동안이지만 노시인처럼 자신의 죽음을 가볍게 만드는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
김상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