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법관탄핵과 권순일의 재판거래 의혹

2021-11-04     경상일보

국회는 2021년 2월4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를 가결하였다. 여야 합의가 아닌,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국회의원 179명에 의해 가결된 것이다. 탄핵이라는 제도는 소추나 처벌이 어려운 고위공무원에 대하여 그 위법행위를 이유로 파면하는 제도이다. 두 차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의 경험이 있는 이 나라에서 대부분 국민은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있었지만,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는 임성근 부장판사의 경우가 최초이다. 일견 생각하면 대통령을 탄핵하여 파면해 본 나라에서 법관의 탄핵을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과 법관이 가지는 무게감의 차이를 따지면 이러한 접근은 당연하다. 그러나 탄핵 대상의 직업적 성격을 고려하면 달리 볼 여지가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위직 공무원이기는 하지만, 정치인이다. 반면 법관은 단지 법률 전문 관료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와 가장 먼 거리에 존재하여야 할 공무원이다. 이러한 법관에 대하여 정치적 징계로 활용되는 탄핵을 가결하는 것은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사법에 정치의 얼룩이 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임 부장판사 탄핵의 구체적인 사유도 수긍하기 어렵다. 탄핵은 공무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징계가 그 본연의 목적인데, 임 부장판사는 그 비위라고 주장되는 행위에 대하여 판결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법적 판단으로 무죄가 선고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탄핵소추가 이루어지는 것은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법관탄핵의 명분은 임 부장판사의 무죄 판결문의 이유 중에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이 있었다는 것이다.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을 ‘위헌행위’로 읽고 그것을 명분으로 한 것이다. 다분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위헌적’이라는 표현은 위헌의 요소가 다소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고, 위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비유하자면, ‘너 하는 짓이 바보 같아’라는 말을 ‘너는 바보다’라고 단정 짓는 것과 같다.

법관탄핵이 왜 이루어졌는지 솔직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현 정권은 김명수 대법원 체제를 만들고 나서, 법원이 항상 자신들에게 우호적일 것으로 생각하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실제 상당수 판결이 정권 친화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한계는 있는 것이라 그 비위 정도가 과한 것까지 법원이 대충 보아 넘기기는 곤란하다. 김경수 댓글 사건, 조국 일가의 비위 사건 그리고 윤석열의 징계 등에서 여권에 불리한 판단이 쏟아지자, 여당 국회의원들은 법관탄핵을 추진하였다. 정확히 말하면 법원 길들이기라고 평가하는 것이 맞다.

만약 여당에 유리한 판단이 이어졌더라면 아마 법관탄핵은 없었을 것이다. 불과 임기가 24일밖에 남지 않아 곧 공무원 신분을 면하는 사람을 탄핵하겠다고 나설 때는 그만큼 정치적 고려가 컸다고 보는 것이 맞다. 법관탄핵을 이처럼 정치적 소재로 쓰려는 태도야말로 위헌적이지 않나.

위법행위가 없고, 임기를 불과 20여 일 남긴 법관을 탄핵할 정도로 사법부의 염결성(廉潔性)을 강조하던 여당이다. 당시 하나의 티끌도 용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여당이 권순일 전 대법관의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반응이 없다. 대법관 퇴직 후에 정체 모를 돈이 매달 1500만 원씩 통장에 꽂혔다. 이재명 후보의 정치적 생명을 무리한 법리를 동원해서 살려주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그런 이재명 후보와 관련성이 짙은 김만배가 대법원을 동네 이발소 드나들 듯이 드나들었다. 김만배 무리와 관련된 ‘50억 원 클럽’에 권순일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 정도면 여당은 법관탄핵과 적당히 형평을 맞추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대법원장은 대국민 사죄를 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연일 회의를 열어 진상조사를 요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도 말이 없다. 모두 숨을 죽인다. 이 정권의 특징인 ‘내로남불’이 또 한 번 발현하고 있다.

이른바 사법적폐를 잡는다고 탈탈 털어내며 칼부림을 하더니, 여당 대선 후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자 바짝 웅크리고 옴짝달싹하지 않는다. 적어도 아직 나라에 염치가 남아 있다면, 그리고 최소한의 균형감각이라도 있다면, 지금쯤은 권순일의 수사를 언급하여야 한다.

김태규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