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호의 철학산책(33)]인문학 운동을 응원하며
필자는 울산 동구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1990년 초, 중반 아직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았던 때, 철학 공부에 빠지게 되었다. 주입식 교육의 테두리 안에서 강렬한 지적 욕구를 해소할 수가 없었기에 울산의 대형 서점에서 책을 구했고, 심지어 서울의 신촌에 위치한 서점에 직접 가서 원하는 책을 구입해서 돌아오기도 했다. 중·고등학교에서 필자는 늘 괴짜로 여겨졌고, 그 뜻은 ‘이해 불가능한’ 정도였다. 그러다가 스물 중반에 떠난 독일 유학 길은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어려운 난관에도 철학과 예술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기에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을 수 있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울산은 이미 많이 변해있었다. 특히 도서관, 신문사 등을 중심으로 철학 및 인문학 강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철학을 관상이나 손금 보는 법 정도로 알던 어린 시절의 어르신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철학에 대한 목마름, 지적인 호기심과 열정 때문에, 더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 찾아오셨다.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해보기를 원했고, 보다 적극적으로 주제를 찾고 나름의 해답을 찾기를 원했다. 시민 사회 내에서 소위 인문학 운동의 힘찬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보완해야 할 점들이 있다.
첫째, 혹시 ‘인문학 없는 인문학 운동’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문학과 철학은 그 기원도, 성격도 다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 둘을 혼동한다. 또한 인문학에 대한 역사적, 개념적 이해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런 무지함과 성찰의 부재는 인문학 운동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요소이다. 둘째, 기본기 없이는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불가능하다.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진리 검토와 진리의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지적 활동이다. 따라서,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과 같은 철학 분과에 대한 탄탄한 이해와 논증 구사에 관련된 연마가 필수적이다.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반드시 성실하고 꾸준한 지식의 습득 및 훈련과 맞물려 성장할 수 있다.
울산 인문학 운동이 뿌리 깊은 나무로, 또 숲으로 성장해 가기를! 바다와 숲이 아름다운 울산이 인문학과 철학으로 더 빛나기를!
김남호 울산대 객원교수·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