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번 읊조리고 덧붙이고 채워진 시간

2021-11-17     홍영진 기자

1974년 울산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울산에서 시를 쓰는 이원복씨. 그는 2014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당선돼 처음 수면 위로 이름을 알렸다. 울산에 본사를 둔 경상일보 신춘문예에 첫 울산지역 당선자로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그 이후 그는 오랜시간 침잠했다. 습작과 창작의 경계를 오가며 오로지 글쓰기에만 몰두했다. 꾸준하고 성실한 자세로 한 줄 한 줄 고역의 작업을 마다않던 그가 드디어 첫 시집 <리에종>(파란)을 펴냈다.

‘사방이 막힌 방 안에 홀로 앉은/두 귀가 없는 소녀가 더듬더듬 오보에를 꺼낸다/소녀는 익숙하게 A음을 길게 뿜어낸다…방의 천장이 열리면 우주 공간의 떠돌이별들도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리에종-불어연습’ 부분

리에종(liaison)은 대부분에게 생소한 말이다. 프랑스어의 연음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한다. 좀더 깊게 들어가면, 소리나지않는 프랑스 단어의 끝 자음이 모음을 만났을 때, 자음이 살아나 모음과 이어서 발음되는 독특한 현상이다.

이 시인은 서로 다른 단어와 객체들이 만나 새로운 의미 체계와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리에종이라는 단어가 그 과정을 잘 표현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수만번 읊조리고, 채워지고, 덧붙여져, 급기야 우주의 떠돌이 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희망과 마주한 뒤 한 수의 시 제목이 되었고, 마침내 40여 수 시를 묶은 시집의 표제로 거듭났다.

“‘리에종’을 곱씹다보면 낯선 어감이 입가를 맴돌다가, 상상적 점성같은 것이 생긴다. 유독 어떤 단어들을 곱씹을 때 나오는 순간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시를 읽고 싶어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문학평론가 정재훈의 해설 중에서

“그의 슬픔은 예의 바르다.… 예의 바른 그가 물기 가득한 이 세계를 관통하며 버티는 연습을 반복해 온 ‘동봉한’ ‘두 발’이 만들어 내는 ‘서정적’ ‘악몽’이 작품 도처에서 축축하게 묻어난다.”

-시인 정창준의 추천사 중에서

“자음은 모음의 골절로 떨어져 나간 뼛조각이다. 때로 그 뼛조각을 이어 붙일 때 멍 자국이 남는다. 언어의 멍 자국을 문지른다.” -이원복 ‘시인의 말’ 중에서

울산문화재단 울산예술지원선정사업.

홍영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