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 안착 어려움 겪는 주 52시간 근무제]산업·건설현장 인력난에 아우성
울산지역 산업현장 곳곳이 주 52시간 근무제 부작용으로 신음하고 있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며 작업중단을 선언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을 필두로 2014년 이후 슈퍼사이클 호황을 기대하는 조선업계는 생산인력이 부족해 아우성치고 있다. 건설업계와 자동차 협력업체·제조업 등 중소기업에서도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지역 산업계가 직면한 주 52시간 근무제 문제와 안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대안을 짚어본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결국 작업중단, 장기화 우려
정부는 지난 2018년 장시간 근로관행을 개선하고 일과 생활을 균형있게 하자는 취지로 우리 사회에 주 52시간 제도를 도입했다. 그 해 7월 3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하는 등 규모별로 순차적 시행에 들어갔고, 올해 1월부터는 50~299인 이하 사업장에도 도입했다. 지난 7월부터는 5~50인 미만 사업장에도 계도기간 없이 전면 확대 시행됐다.
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은 관급공사, 민간공사나 조선업, 건설업, 뿌리산업 등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대표적으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과 건설업, 조선업계, 자동차 협력업체, 중소기업 등 업계가 주 52시간 제도의 부작용을 성토하고 있다. 제도가 시행되면서 공사기간 연장과 실질 임금 감소, 이에 따른 인력 충원 어려움과 부담비용 증가 등이 이유다.
실제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은 지난 18일부터 협력업체들이 작업 거부에 들어갔다. 지난 19일에도 소장단 회의가 열렸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작업 중단은 이번주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협력업체 소장단은 22일 시청에서 대책 마련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특히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협력업체들은 주 52시간 제도 시행으로 공사 기간이 크게 늘어나 부담해야 할 비용이 늘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할 정도라며 업체별로 누적 적자가 수십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공사 기간이 늘어났고, 2018년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재차 공사 기간이 늘어났다. 이에 따른 근로자 퇴직금, 주휴수당 등 직접적인 비용 부담이 증가했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협력업체가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제도 개선이 없는 한 쉽사리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발주처인 한수원도 주휴수당 증가 등 직접비용 부담을 인정하지만, 도급계약의 주체가 아니어서 법적으로 도와줄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자동차·건설업계도 비명
현대중공업 등 조선업계도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한 여파로 인한 피해를 고스란히 보고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세계 선박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고 한국 조선업계도 꾸준히 선박 수주량을 늘리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가 최근 8개 조선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생산직접직 필요인력 자료를 보면 울산은 내년 1분기에는 4700여명의 인력이 필요하고, 4분기에는 5600여명에 육박하는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상당수 협력업체는 인력이 더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만두는 인력이 많다. 주 52시간 제도 시행으로 근로자들이 받는 실질 임금이 줄어들었다는 게 협력업체 관계자들의 얘기다. 상당수 업체들은 4대 보험료마저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 협력업체 대표는 “우리 회사에서만 올해 들어 10명이 넘는 직원이 그만뒀다. 지난해까지는 월 300시간 이상 근무했는데 올해부터는 근무시간이 월 200여시간으로 100시간 가까이 감소해 월급도 줄어들었다는 이유였다”며 “돈이 안되는데 위험하기까지 하니 누가 선뜻 일하려고 하겠느냐”고 한숨쉬었다.
현대자동차 협력업체들도 원청의 생산 차질로 매출 감소와 경영난을 겪고 있다. 현대차 노사는 고육지책으로 주 52시간 제도 도입 이후 처음으로 올해 연말까지 일요일 특근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노조 각 사업부 반대로 사실상 무산됐다. 이 밖에도 야외 작업 비중이 높은 건설업계 등은 기상 악화 등으로 작업이 밀렸을 때 주 52시간 근무제 아래에서는 유연한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세홍기자 aqwe0812@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