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55)]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2021-11-26     경상일보

월악산 송계계곡을 지나 미륵대원지로 향한다. 조락의 계절, 나무들은 온몸으로 잎을 털어내며 겨울을 준비한다. 미륵대원지는 하늘재, 새재에 둘러싸인 험준한 산골짜기에 있는 절터다. 고려시대 석불과 석굴이 있던 흔적, 석탑, 석등, 돌거북과 연화문이 아름다운 당간지주 등 돌 문화재가 즐비하게 남아있어 규모가 큰 사찰이었음을 말해준다. 어떤 문헌에도 확실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 미륵대원지에는 마의태자의 설화만이 생생하게 전해온다. 신라가 망하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는 누이 덕주공주가 월악산 영봉 아래 마애불을 조성하자 덕주사를 바라보도록 북쪽을 향해 미륵입상을 주불로 하는 석굴사원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쪽을 바라보는 특이한 구조이다.

깊은 산골짜기의 절터에는 본존불인 미륵대불, 석등, 오층석탑이 일직선상에 놓여있다.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무량한 석탑과 장쾌한 미륵대불의 어울림이 완벽했다. 오랜 시간을 꿋꿋하게 버티고 있던 미륵불은 지금 천막에 가려있다. 보호석실 해체보수 작업 중이다. 어깨를 내어주던 후덕한 부처가 숨어버리자 오층석탑만 덩그렇게 서 있어 안쓰럽다.

보물 95호, 미륵리 오층석탑(사진)은 단아하고 정형화된 신라 석탑과는 확연히 다르다. 높이 6m에 이르는 거대한 석탑은 전체적으로 조형미가 떨어진다. 그 자리에 있던 바위 안쪽을 파내어 기단을 만들다보니 한쪽 면석은 제대로 각을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졌다. 몸돌은 지나치게 넓은 반면 지붕돌은 좁고 낙수면의 기울기가 심하다. 거칠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탑도 늙어서 돌 사이가 벌어져 바람이 숭숭 드나든다. 중심 기둥인 찰주마저도 기울어져 있다. 탑돌이를 하다가 나도 모르게 빙긋 웃고 만다. 내 몸도 저렇게 쇠하여 한쪽으로 쏠리곤 하니까. 아까부터 탑을 바라보는 부부도 몸이 제법 기우듬하다.

망국의 한을 품고 하늘재를 넘어 금강산으로 간 마의태자는 끝내 돌아올 수 없었다. 붙잡을 수 없는 가을도 고개를 넘는지 골바람이 기세 좋게 마른 잎을 마구 날린다.

배혜숙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