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금칼럼]현금보다 정책

2021-12-14     경상일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현금지원이 급속히 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국민들의 팍팍한 현실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도 여러 명목으로 현금성 지원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현금지원 규모의 증가속도와 지원 대상을 보면 우려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동원 가능한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국민들이 부담할 수 있는 조세규모는 정해져 있으며, 이를 초과하여 지출하는 경우에는 국가가 빚을 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가는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재원을 가급적 효율성과 형평성에 맞게 지출하는 것이 국가예산 운용의 대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예산규모는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증가하여, 내년 예산은 607조에 달한다. 국가채무도 100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효율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는 현금성 지출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간접적으로 현금을 지원하는 지역화폐(이것을 화폐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어불성설이다) 발행규모가 2019년 2조, 2020년 6조에서 내년에는 30조원 규모로 늘어난다. 불과 3년 사이에 15배나 증가하는 것이다. 울산시도 재난지원금 명목으로 올해 2월 기초자치단체와 함께 가구당 10만원씩을 지급했으며, 연말에는 주민 1인당 10만원씩의 지원금을 추가 지급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들에게 50만원의 수당을 지급하는 계획도 발표하였다.

물론 이러한 현금지원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의 영세상공인, 자영업자, 그리고 청년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을 위해서는 지역화폐나 재난지원금보다는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청년들을 위해서도 1회성 현금지급보다는 안정적으로 수입을 확보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더욱 절실하다.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현금을 나눠주는 것보다 더욱 정교하고 구체적인 정책설계가 필요하다. 시기적으로도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단기적인 대책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비해야 할 것을 구분하여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코로나가 우리를 덮친 지 2년이 다되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기응변식의 선심성 현금지원만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정책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근본적인 문제해결보다는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울산시는 1인당 10만원 지급에 소요되는 예산 1134억원을 정부교부금 증가분 등으로 충당할 예정이라고 한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1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지금 울산에서 가장 절박한 사안을 해소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4년간 지방채 발행액이 3300억원에 달하는 울산시가 1000억이 넘는 규모의 혈세를 이렇게 한 방에 날려버리는 것은 누가 봐도 선거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이다.

시민들은 1회성 현금지급보다는 울산에 가장 필요한 정책에 투입하는 것이 책임 있는 정부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를 들면, 울산 경제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코로나로 인해 문을 닫는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들을 소생시키는데 사용할 수 없는가. 청년들에게 50만원을 지급하기보다는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울산에서 살아갈 수 있는 미래지향적 투자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가. 또 팬데믹 시기에 가뜩이나 열악한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에 쓸 수는 없는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할 것 없이 채무가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서 일회성 현금지원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현금을 지급하면서 생색을 내고 있지만 정작 그 부담은 현재의 2030 세대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기가 막힌 ‘불편한 진실’이다. 울산시는 단순한 현금성 지원을 멈추고, 그 재정이 피해계층에 대한 직접적 지원과 미래지향적 사업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합리적인 정책을 설계하기 바란다.

정준금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