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72㎞씩 날아 몽골서 울산 온 독수리들
2021-12-20 이왕수 기자
대박이의 사연은 지난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범서읍 입암리 들판에서 쓰러진 대박이가 발견됐다. 떼까마귀를 싫어하는 일부 농민이 농약을 뿌려둔 먹이를 먹었기 때문으로 추정됐다. 이를 발견한 운전자가 울산야생동물구조센터에 신고했고, 위 세척과 함께 치료와 재활이 병행됐다.
차츰 건강을 회복한 대박이를 방사할 시점이 다가왔다. 녹색에너지촉진시민포럼 황인석(환경정치학 박사) 사무국장은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에게 대박이에게 위치추적장치인 GPS를 달자고 제안했다. 위치추적기, 태양광 전원 등을 갖춘 약 70g의 GPS 장비는 1000만원을 훌쩍 넘었지만 선듯 ‘OK’했다. 3시간에 걸친 장착 작업이 진행됐다. 이제는 윙태그가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에 태양빛과 바람에 견딜 수 있는 특수 코팅 재질의 윙태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무상으로 기부받았다.
대박이는 지난 3월16일 오후 2시 범서읍 입암리 들판에서 GPS가방을 매고 날개에 윙태그를 부착한채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남풍이 불기 시작한 3월22일 몽골을 향해 비상했다. 16일 뒤 울산에서 2880㎞ 떨어진 몽골 이크나크 자연보호구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난달까지 이크나크 지역에서 지냈다.
대박이는 영하 40℃까지 내려가는 몽골에 겨울이 다가오자 다시 남하를 시작했다. 북풍이 불기 시작한 지난 11월7일 날기 시작해 남고비 사막, 내몽골을 거쳐 지난 7일 중국 단둥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북풍을 타고 북한 상공을 바로 통과해 약 1000㎞ 떨어진 경기도 평택에 지난 13일 도착했다. 15일 경북 상주, 영천, 경산 등을 거쳐 17일 울산에 도착했다. 하루 평균 72㎞, 최대 313㎞, 총 비행거리 약 2880㎞다.
대박이가 울산까지 내려오는 이유는 먹이 활동 때문이다. 지난 3월 방사 당시 몸무게 9㎏, 날개길이 2.5m였던 대박이는 태어난지 약 2년 정도 된 어린 개체로 꼽힌다. 맹금류인 독수리는 주로 죽은 짐승의 시체를 먹는데, 주요 서식처인 중국 단둥이나 경기도 평택 등에서 먹이 쟁탈전에 밀려 울산까지 남하한 것으로 추정된다. 울산에는 녹색에너지촉진시민포럼이 자비로 매주 두 차례 운영하는 독수리 식당이 있기도 하다.
몽골에서 울산을 찾는 독수리가 매년 340~500마리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수 년 후에는 울산에서 독수리를 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주요 서식지인 입암리 일원에서 추진되는 선바위 공공주택지구 사업 때문이다. 서식 대체 부지가 만들어지지 않을 경우 ‘울산 독수리’가 먹이활동을 하거나 숙영할 장소가 사라지게 된다.
녹색에너지촉진시민포럼 황인석 사무국장은 “지금까지 독수리가 몽골에서 울산으로 내려온다는 사실만 확인됐지만 대박이에게 부착한 GPS와 윙태그로 인해 처음으로 비행 경로까지 확인됐다”며 “울산이 제2의 고향인 독수리가 계속 찾아올 수 있게 선바위지구 사업 과정에서 독수리 서식 대체 부지를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