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5)]범 내려온다

2022-01-04     이재명 기자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장림(長林)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 누에머리 흔들며, 전동(箭桐)같은 앞다리, 동아같은 뒷발로 양 귀 찌어지고,/ 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며,/ 주홍 입 쩍 벌리고 ‘워리렁’ 허는 소리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툭 꺼지난 듯, 자래(자라) 정신없이 목을 움추리고 가만이 엎졌것다.…



지난 2020년 여름을 강타했던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의 가사다. 독특한 음색과 춤으로 대한민국을 들썩거리게 했던 이 노래의 가사는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수궁가’의 한 토막을 소재로 삼은 것이다. 토끼 간을 구하러 육지에 올라오느라 기진맥진한 자라가 토끼를 발견하고 ‘토(兎) 선생’을 부른다는 게 발음이 헛나와 ‘호(虎) 선생’을 부르는 바람에 산에서 호랑이가 내려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범 내려온다’는 지난해 초 TV조선의 ‘내일은 미스트롯2’에서 김태연 양이 불러 대힛트를 쳤다. 김 양은 두 손을 범 앞발 모양으로 얼굴에 대면서 노래를 불러 ‘아기 호랑이’라는 별명까지 갖게 됐다. 아기 호랑이는 ‘갈가지’ ‘개오지’ ‘개호지’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앞니빠진 갈가지 뒷니빠진 개오지/ 앞도랑에 가지마라 피리새끼 놀랜다/ 뒷도랑에 가지마라 송어새끼 놀랜다/ 방구(방구:바위)밑에 가지마라 다람쥐가 놀랜다/….



조선의 여행가 옥소 권섭(1671~1759)이 지은 <유행록> 중 울산에 왔던 내용을 기록한 ‘남행일록’을 보면 집채만한 호랑이 이야기가 나온다. 권섭은 1731년(영조7) 3월13일 장천사로 와 반구대, 집청정 등을 둘러보고 장천사에서 묵었다.



“장천사는 비록 누추하지만 앞으로 큰 내(川)를 바라보고 있어서 아주 좋았다.…저녁에 내(川)의 남쪽에서 산보할 때 황백색의 큰 호랑이가 중턱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여러번 몸을 변화시키면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



반구대 암각화에는 22마리의 호랑이가 나온다. 권섭이 보았던 대곡천 호랑이가 혹 반구대암각화 속의 호랑이 후손은 아닐까.

임인년(壬寅年)이다.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한 발이 넘고…쇠낫같은 발톱으로 잔디뿌리 왕모래를 촤르르르르 흩치’는 호랑이의 기세가 올해는 코로나까지 모두 모두 물리쳐 주려나.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