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울산시립미술관 서진석 관장, “개관전, 미디어아트의 시대적 흐름 한눈에”
오는 6일 울산시립미술관이 개관한다. 지역미술계를 중심으로 울산공공미술관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후 담론 형성, 실무 행정, 장소 확정, 실시설계, 건립 및 준공에 이르기까지 장장 20년에 걸친 사업이 첫 결실을 맺는다. 다만 미술관 개관은 이 사업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개관 기념 전시를 앞두고 시민들의 평가를 기다리는, 서진석(53) 초대 울산시립미술관장을 만나 ‘미술도시 울산’으로의 청사진을 들어봤다.
“5건의 개관기념전을 동시에 선보입니다. 평면, 입체, 설치, 공연, 디지털 미디어 아트까지 스펙타클한 현대미술작업을 감상할 수 있을 겁니다. 초창기 비디오 아트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인터미디어, 장르끼리 뒤섞이는 믹스드 미디어, 온전히 융합돼 새로운 작업을 보여주는 컨버전스 뉴미디어까지, 우리시대 미디어 아트의 시대사적 흐름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공공미술관 개관전으로 미디어 아트로만 국내외 70여명 작가가 참여하는 전시는 드뭅니다. 직원들 모두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메인 전시인 ‘포스트 네이처’에 대한 설명이 길었다. 지구는 기술과 자연의 대립을 지나 공존을 모색하는 단계에 와 있지만 앞으로 인류는 기술과 자연이 융합하여 또다른 혼종적 생태계를 만들지 않을까 질문하는 전시라고 했다.
“자연과 기술의 관계에 관한 전시는 사실 굉장히 많습니다. 그만큼 21세기 동시대에 아주 중요한 어젠다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기술에 종속되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인간·자연·기술이 수평적으로 융합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가 결정되겠죠. 우리 미술관은 그런 미래를 최첨단 미디어 아트를 통해 상상하도록 도울 겁니다.”
아무리 좋은 의미, 꼭 필요한 가치라도 ‘미디어 아트’를 낯설어하는 시민들을 설득할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메인 전시보다 더 긴 답변이 돌아왔다.
“예술이 작품 그 자체로 완성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예술은 작품, 작가, 대중에게서 발현됩니다. 변기를 전시장에 들여놓은 뒤샹의 개념미술과 젊은 시절의 백남준이 참여한 플럭서스가 대표적이죠.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기계’에 의해서도 발현됩니다. 상호·쌍방의 개념을 너머 ‘AI’가 예술까지 들어와 있어요. 세계 어느 미술관을 가더라도 이제는 미디어 아트를 빼고는 전시가 힘듭니다. 가상현실이 일반화 되고 있죠. 사람들은 그런 것에 더 흥미를 느낍니다. 저는 우리 미술관이 그러한 대중의 미적 감각을 오히려 못따라가게 될 까봐 걱정입니다. 미술관은 이를 적극 수용하는데 그칠 게 아니라 그 것들을 재편해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곳입니다. ‘신기술 매체를 활용한 확장적 장르’에 시민들이 매혹적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사실 울산시립미술관에 대한 국내외 관심은 폭발 직전이다. 메타버스, NFT, 블럭체인, AR·VR·XR 등이 시대적 화두가 된 세상에 지역 공공미술관이 디지털 기술기반 미래형 미술관을 지향하며 개관하기 때문이다. 서 관장은 조금만 늦었으면 울산이 선도할 기회를 놓칠 뻔 했고, 서둘러 개관하는 것이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광주를 비롯해 광역지자체들이 서둘러 미디어아트센터를 개관하려 합니다. 심지어 인근 경주도 준비작업에 들어갔죠. 개관일에는 전국미술계는 물론 미디어아트를 준비하는 전국지자체의 공무원들까지 울산을 방문합니다. 국내 뿐만 아니라 지난달 진행한 미래뮤지엄포럼도 효과가 컸어요. 11개 기관이 오픈채팅으로 만났는데 올해는 무조건 대면행사를 치를 겁니다. 매년 스위스에서 세계경제를 논하는 다보스포럼이 열리는 것처럼, 이제 미래형 미술은 울산이 주도하는 미래형미술관포럼이 주도할 것 입니다.”
서 관장의 집무실엔 러시아를 대표하는 미디어아트 그룹 ‘AES+F’의 대표작이 걸려있다. 볼쇼이 발레학교 학생들을 모델로 해 가상의 세계를 연출한 것으로, 제목은 ‘최후의 반란(혁명)’이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이후 사진과 페인팅, 컴퓨터 그래픽,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활용한 그들의 작업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집무실에 걸린 작품은 서 관장 개인의 소장품이기도 하다. 이데올로기와 역사의 종말을 시각화했다는데 누군가에겐 동서양 다양한 문화의 수평적 관계론을 보여주고, 또다른 누군가에겐 동시대 미술의 방향성을 질문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새로운 미술관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가! 그 작품이 서 관장의 질주를 예고하는 듯 했다.
서진석 관장은 경원대 응용미술과, 시카고 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99년 한국미술 최초로 대안공간인 루프를 설립했다. 2004년부터 비디오아트페스티벌(무브 온 아시아)을 기획하여 130여 명의 아시아 작가들과 함께 전세계 순회전을 가졌고 2010년에는 A3아시아현대미술상을 기획했다. 2015~2019년에는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으로 일하며 다양한 국제활동을 통해 세계 미술인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안해왔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