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본 울산시립미술관 개관전, 공공미술관 최초 미디어아트 전용관 ‘XR랩’
2022-01-06 홍영진 기자
낯선 이름 ‘XR랩’(eXtended Reality Lab)은 한마디로 미디어 아트에 방점을 둔 울산시립미술관에서 그 미디어 아트를 가장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최적화 시스템을 갖춘 전용관이다.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최신 디지털 기술이 제대로 활용되도록 만든 곳이다. 전국 공공미술관 중 XR랩을 둔 곳은 울산이 처음이다.
그런데 XR랩은 그냥 텅 빈 공간이다. 무언가 가득 채워져 있을 것만 같아 기대감을 품고 입장했다면 잠시 실망할 수도 있다. 다만 기계실의 미디어 장비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분위기는 반전된다. 단조롭기 그지없는 직육면체 전시장이 순식간에 빛과 어둠이 연출하는 무한공간으로 변신한다. 파도치는 백사장에 서 있는 기분이 드는가 싶더니, 밤하늘의 별이 머리 위로 쏟아지다가, 어느 순간 은하수를 마주한 우주비행사처럼 미지의 세상에서 나약한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방 벽면과 바닥을 스크린처럼 활용하여 연출한 이같은 설정은 모두 미디어 아트가 구현하는 시각적 효과였다. 이 상황은 옆사람과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귓전에서 왕왕 울려대는 음향 효과와 시너지를 이룬다. 전쟁터의 폭격현장, 거대한 구조물의 엔진, 지구공전이나 심해의 아득한 사운드가 이어진다.
관람객은 가상의 세계 속에 오롯이 홀로 던져진 듯 미묘한 느낌을 갖게된다.
XR랩에서의 체험은 미디어 아트 선구자, 알도 탐벨리니의 작품이다. 그는 1세대라는 표현이 미안한 정도로 이미 그 이전 시기부터 오늘날의 전자융합예술 개념을 작업 속에 구현해 왔다. 그는 아흔의 나이로 지난 2020년 사망했다. ‘블랙 앤드 라이트’ 제목의 이번 전시는 그가 남긴 가장 최근의 작품이자 유작이다. 숨을 거둔 그 해 선보였던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원주민이다’를 음악, 무용, 시낭송이 융합된 새 버전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업이 개관기념전이 된 이유는 그의 작업에 깃든 주제의식이 울산시립미술관이 가고자하는 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는 “나날이 진보하는 기술의 변화 앞에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단순하게 끌려 갈 것인지, 아니면 융합하여 새로운 무엇을 창조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한편 울산시립미술관은 6일 오후 2시 개관기념행사를 치르고, 7일부터 모든 전시의 일반 관람을 시작한다. 14개국 72명 작가들이 참여한 개관기념전은 미술관 본관과 대왕암공원 옛 교육연수원에서 나뉘어 진행된다. 본관 전시는 XR랩 전시, 주제전 ‘포스트 네이처: 친애하는 자연에게’, 어린이전시 ‘노래하는 고래, 잠수하는 별’ 3건이다. 옛 교육연수원에서는 백남준의 ‘거북’ 등을 볼 수 있는 ‘소장품’전과 미래사회 현대미술을 이끌 청년작가들의 ‘대면-대면’전이 마련된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