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없는…‘너무 낯선’ 울산시립미술관
“아니, 미술관에 왜 그림이 없나요?”
울산시립미술관이 전면개관했다. 현대미술 최전선에 자리한 전시품과 이를 이해하려는 관람객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교육과 체험 등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시립미술관의 부단한 노력과 신박한 기획력, 그에 다른 예산 확보가 절실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의 첫 공립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으로 시민들의 발길이 몰리고 있다. 미술관은 오랜 기간 지역 문예계의 이슈였고 최근에는 개관을 알리는 언론보도가 적지 않았다.
6일 개관식 및 프리뷰에 이어 7일 전관을 완전개방하면서 지역 인사들과 미술인은 물론 일반인 관람객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방문객까지, 주말 내내 사람들이 붐빈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본보 취재진이 아침 개장 시간에 맞춰 9일 오전 현장을 방문했을 때도, 지하주차장은 물론 건물 옆 임시 주차장인 공터(옛 울산초등학교 부지)까지 주차된 차량으로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방문객들은 지하 2층의 1·2전시장과 지하 1층의 XR랩(실감형 미디어아트 전용관)을 오가며 시립미술관이 마련한 개관특별전시를 관람했다.
다만 전시품 사이를 누비던 관람객들 사이에선 의아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액자 속에 걸린 그림을 보여주는 방은 없느냐”고 묻거나 “교과서에서 본 명화가 한 점도 없어서 실망스럽다”고 했다. 또다른 이는 “뭔가 그럴싸하게 진열된 것 같긴 한데, 돌아서니 도통 내가 뭘 본 건 지 알 수가 없다”고도 했다.
이들은 기대를 모았던 울산시립미술관 공간과 전시품들이 통념 속 ‘미술관과 전시작품’과 너무 달라 그 틈새를 어떻게 채워야 할 지 고민스러운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 공립미술관 중 최초로 ‘미디어 아트’ 전문 미술관을 표방하겠다고 선언한 울산시립미술관에는 현재 전통미술 개념의 회화 작품 대신 최신 버전의 대형 모니터 화면이 주요 전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또다른 전시품들 역시 힐링과 위로를 안겨주던 예술작품과는 거리가 멀다. 차가운 철제 구조물이 빙글빙글 돌거나, TV 화면이 초 단위로 번쩍번쩍 바뀌거나, 녹슬고 찌그러진 폐차 속에 나무토막과 흙을 담았거나, 수백개의 물병을 물로 채운 뒤 진열장에 올려놓았을 뿐이다.
관람객 입장에선 생경한 소재와 아름답지 않은 형태를 느닷없이 마주한 것도 당혹스러운데, 한발 더 나아가 이를 갖다놓은 작가의 의도나 메시지까지 파악하고 이해해야 했다.
편안하게 감상하러 왔다가 뭔가 숙제만 잔뜩 얻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 ‘현대미술’ 혹은 ‘미디어 아트’라고 불리는 이 모든 상황이 버거울 수밖에 없다.
미술관을 다 둘러 본 한 시민이 동행자에게 “그러게 ‘미술’은 우리하고 안맞는다고 했지?”라며 푸념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같은 발언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이지만, 문제는 표현의 수위나 정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이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관 기념식에 참석한 어느 지역인사도 “미술품이 너무 난해하다. 감상평을 한마디 하고 싶어도, 입이 안떨어진다. 새로운 걸 보여주겠다는 의도는 알겠으나, 낯설어도 너무 낯설다”고 조용히 털어놨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이런 가운데서도 미술관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람객 역시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미술인은 “걱정했던 것 보다 좋은 작품이 많았다. 미술관은 여유를 갖고 둘러봐야 한다. 특히 XR랩에서는 오랜 시간 머무러 있기를 권한다. 표피적인 것만 보지말고 그 속에 담긴 철학과 메시지를 탐구하는 것이 ‘현대미술’임을 이해하고 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두 자녀와 함께 온 젊은 부부는 “어린이 전용관에서 한참 있었다. 햇볕이 들어오는 큰 창이 있어서 새로웠다. 마치 놀이터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전국 최초의 ‘미디어 아트 전문 미술관’ 울산시립미술관은 이제 막 구르기 시작한 고속철과 같다. 지역에서 시도하는 최첨단 현대미술관의 초기 운영 난제는 이미 예상한 문제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편을 고민 중이다.
시민들과의 스킨십을 늘리는 아카데미 개강, 미술애호가의 모임과 담론 형성에 꼭 중요한 아트살롱(카페) 개장, 직장인·비평가·미술입문자·심화과정 등 눈높이를 고려한 전시장 라운딩 서비스, 미술관과 기업이 상생하는 윈윈프로젝트 추진 등 계획 단계의 후속조치가 하루 빨리 실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오픈빨’의 기대감과 호기심을 동력삼아 미래형 미술도시를 향한 본 궤도에 오를 수 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