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6)]소한과 대한 사이, 아 동동구루무
지난 5일은 소한(小寒)이었고, 오는 20일은 대한(大寒)이다. 절기상 대한이 가장 추운 시기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소한이 더 추운 시기다. 이와 관련해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 ‘대한이 소한 집에 가 얼어 죽는다’ 등의 속담이 내려온다. 어쨌든 소한과 대한 사이는 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소한과 대한 사이는 춥지만 아이들이 놀기 좋은 시기였다. 일찌감치 동네 어른들이 논에 물을 대놓으면 소한 무렵에 드디어 얼음이 얼었다. 마을 아이들 모두가 나와 각종 스케이트를 선보였다.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비롯해 발 스케이트, 지게 스케이트까지…. 오후께가 되면 얼음이 슬슬 녹아 고무얼음으로 변했다. 이 때부터 물에 빠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어떤 아이는 논두렁에 모닥불을 피워 양말을 말리다가 나일론 양말을 홀라당 태워먹기도 했다. 또 어떤 아이는 모닥불에 궁둥이를 말리다가 연약한 피부에 화상을 입기도 했다.
동동구루무는 이런 어릴 적 추억에 지문처럼 깊게 박혀 있다. 손등이 갈라지고 발가락에 동상이 걸리도록 놀다가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는 뜨거운 물에 손을 녹히고 동동구루무를 발라줬다. 다음날이 되면 신기하게도 꺼칠꺼칠했던 손 발이 부드럽고 촉촉하게 변해 있었다.
동동구루무 한통만 사면 온동네가 곱던 어머니/ 지금은 잊혀진 추억의 이름 어머님의 동동구루무/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가는 밤이면 내 언 손을 호호불면서/ 눈시울 적시며 서러웠던 어머니 아~ 동동구루무// 동동구루무 아끼시다가 다못쓰고 가신 어머니/ 가난한 세월이 너무 서럽던 추억의 동동구루무/ 달빛이 처마끝에 울고가는 밤이면 내 두뺨을 호호 불면서/ 눈시울 적시며 울먹이던 어머니 아~동동구루무~
지금도 많은 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동동구루무’는 일제시대부터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화장품이었다. 노래 ‘동동구루무’에서 ‘동동’은 북소리고 ‘구루무’는 ‘크림’의 일본식 발음이다. 동동구루무 장사가 걸어가면 등 뒤에 맨 북의 채와 발목에 연결한 끈이 북을 친다. 그 북을 치는 소리가 걸어갈 때마다 ‘둥둥’하고 울려 동동구루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축제가 열릴 때 각설이들이 가장 자주 보여주는 것이 바로 ‘동동구루무 쇼’다.
바람이 문풍지에 울고가는 겨울의 한 복판이다. 내 두손과 두뺨을 호호 불면서 동동구루무를 발라주던 어머니가 그립다.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