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계절한담(閑談)(237)]추울수록 반가운 친구, 세한삼우

2022-01-18     이재명 기자

‘세한(歲寒)’은 설 전후의 혹독한 추위를 말한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歲寒圖)는 1844년 58세의 추사가 유배지 제주도에서 그린 문인화이다. 귀양살이하는 자신을 잊지 않고 중국에 갈 때마다 최신 서적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에게 답례로 그려 보낸 것이다. 세한도란 제목은 <논어> 자한편의 ‘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에서 따온 것이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제자 이상적을 말한다.

이 맘 때가 되면 온 산천은 두가지 색깔로 나뉜다. 낙엽이 모두 떨어진 회색 아니면 울울창창한 푸른 색이다. 여름과 가을에는 푸른 나무들이 뒤섞여 있어 몰랐지만 세한 무렵이면 드디어 그 본색이 들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겨울이 돼도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식물 3종을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한다. 이른바 ‘송죽매(松竹梅)’다.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수석(水石)과 송죽(松竹), 그리고 달을 다섯 벗이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소나무는 군자 중의 군자다. 더우면 꽃이 피고 추우면 잎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가/ 구천에 뿌리 곧은 줄 그로하여 아노라. 성삼문은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하자 죽고 난 뒤 금강산의 낙락장송이 되겠다고 노래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蓬萊山) 제일봉에 낙락장송(落落長松) 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할 제 독야청청(獨也靑靑)하리라.

대나무(竹)는 눈을 맞아 휘어질지언정 결코 구부러지지는 않는다.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푸름을 잃지 않는다. 눈 맞아 휘어진 대를 뉘라서 굽다턴고/ 굽을 절이면 눈 속에 푸를소냐/ 아마도 세한고절(歲寒高節)은 너뿐인가 하노라. 고려 말에서 조선초까지 활동했던 원천석(1330~?)이란 선비가 쓴 시다. 그는 이방원이 벼슬을 내렸으나 끝내 거절하고 칩거했다. 그의 시는 굽신거릴려면 처음부터 푸름을 간직했겠느냐 하는 내용이다.

매화(梅)는 만물이 추위에 떨고 있을 때에도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눈 속에서 꽃을 피워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1566~1628)은 그의 시 야언(野言)에서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결코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라며 티끌 많은 세속과의 타협을 거부했다.

세한(歲寒)은 혹독한 추위를 말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모진 시련을 뜻하기도 한다. 영원한 겨울은 없다.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 세한삼우(歲寒三友)를 떠올려 보시라.

이재명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