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동시대, 새로운 미술관의 필요성

2022-02-04     경상일보

미술관은 항상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모해 왔다. 근대 이전에는 특권층(귀족, 왕족 등)에게만 문화지식, 정보의 소유 권한이 있었고 이는 곧 권력이었다. 그들만의 캐비닛에는 전 세계에서 수집한 진귀한 보물들과 예술품들이 가득했다. 18세기, 프랑스 혁명 이후 혁명정부는 “루브르 궁전에 있는 왕의 보물들과 예술품들은 대중의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문화지식 향유의 민주화와 함께 우리가 아는 공공미술관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미술관은 시대사적 흐름과 함께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 계몽주의 미술관은 전문화된 예술지식을 활용해 지역, 민족 간 문화적 위계를 만들기도 하였고 신자유주의 시대, 유미주의 미술관은 자본주의와 공생하며 현실 이상의 초월적 가치로 추앙받기도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탄생 이후 약 200여년이 지났다. 위르겐 하버마스가 이야기했던, 자정성, 자율성, 다양성이 전제되는 ‘여론의 공론장’이 온라인의 가상공간에 출연했다. ‘촛불혁명’ ‘자스민혁명’ ‘노란우산혁명’ 등 우리는 상시접속, 접속평등의 포스트 디지털시대에 지식과 정보 소유의 민주화를 맞이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문화지식의 공론장은 진정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을까? 또한 신자유주의시대, 예술은 자본의 거대한 힘을 극복할 수 있을까?

지금 현대미술계는 통화 과잉공급과 함께 금융화(financialisation) 현상, 즉 예술의 투자 상품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트페어들은 연일 최고의 매출을 경신하고 있으며 NFT, 블록체인, 비트코인 등 온라인 미술시장 또한 급속히 팽창하고 있다. 많은 예술인들이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못하면 이 시대의 변화에서 소외될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조차 갖는다.

이렇게 디지털 기술혁명과 글로벌 캐피털리즘이 가져다준 ‘공공과 공유’란 공적가치의 예술과, ‘소유와 이윤’이란 사적가치의 예술, 이 두 가지 양가적 현상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미래의 미술관들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반응하며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한다.

하나, 동시대에 인간은 자연 환경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의 압력에 의해 진화하고 있다. 우리의 감각은 공감각, 다감각, 보다 깊이 있는 미적 감각으로 확장되며 현대미술의 대중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또한, 실험성과 대중성의 간극은 사라지며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는 희석된다. 그동안 미술관이 가지고 있었던 미학적 전문성이란 권위와 권력이 대중에게 이양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래의 미술관은 그들의 독립적 전문성을 탈피하며 다양한 미적 관점의 가치들이 위계없이 수평으로 교류되는 공유와 공공의 장을 제시해야 한다.

둘, 예술은 의식주와 같이 우리 삶의 기본 공공재가 된지 오래다. 신자유주의시대, 자본과 결합하며 유사 성전화되었던 예술은 이제 그 울타리를 허물어 일반 대중들의 삶에 흡수되어야 한다. 앞으로 우리 삶의 사적, 공적영역, 유사 성전화된 미술관의 영역은 서로 융합될 것이며 미래의 미술관 또한 물리적 게토를 벗어나 지역 사회와 유기적 생태를 구축하고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셋, 광속으로 변화하는 디지털 사회는 세대, 계층 간의 신 기술매체 접근성에 대한 불균형을 만들고 있다. 즉 신세대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보다 쉽게, 빨리, 많은 정보에 접속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또한 자본의 상위계층은 더 빠르고 편리한 온라인 소통 시스템의 사용권을 가지며 평등이 아닌 접속불평등의 사회를 야기하고 있다. 미래 사회에서는 디지털 기술매체 접근성이 개개인의 생존 경쟁력과도 비례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술관은 이러한 미래를 대비하며 누구나 평등하게 디지털 기술매체 접근할 수 있는 민주적 소통 환경을 제시해야 한다.

울산시립미술관은 미래형 미술관을 표방하며 탄생했다. 신자유주의의 극대화, 사회계층 간의 갈등, 포스트코로나 등 암울한 동시대에 예술의 공공적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기이다. 약 200여년의 미술관 역사와 함께 울산시립미술관은 미래의 새로운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모색, 실천하며 이 시대를 선도하기를 바란다.

서진석 울산시립미술관 관장